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살다 보니 호락호락한 겨울은 없었다. 봄이 오려면 어김없이 모진 산통을 겪는다. 유난히 포근한 겨울에도 반드시 꽃샘추위는 있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어쩌면 지난해의 사계는 내내 매서운 겨울이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뒤죽박죽 흔들어 댔고 자유로웠던 모든 일상은 좁은 공간에 포박 당했다.

계절에 마디를 두는 것은 혼란을 묻고 희망으로 나아가라는 자연의 섭리이다. 감염병의 창살 안에 갇혀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혹한의 겨울도 만고의 이치를 거스르기 어려웠던지 해빙의 기운을 드러냈다.

팬데믹의 정세는 여전히 엄혹하지만 그렇게 봄은 찬란하게 왔다. 계절이 바뀌었음을 맨 먼저 알려내는 화사한 벚꽃은 속 살 뽀얀 얼굴로 동토의 흔적을 살포시 밀어냈다. 지천에 널린 벚꽃은 공포를 잠시 잊게 하고 사람들의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봄은 시나브로 일상에 스며들었다. 

봄꽃에 취한 봄날에 어떤 이들은 삐딱한 시비를 건다. 일본 국화인 벚꽃에 환호하는 것이 민족정서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대략난감이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꽃이 벚꽃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꽃도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인의 주식이 쌀이라고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을 타박하며 멀리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 사실도 애당초 틀렸다. 일본은 법률상 국화가 없다. 따라서 벚꽃은 그들의 국화가 아니다. 오히려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학문적 의견도 강하게 일고 있다. 우리의 국화로 알려진 무궁화도 마찬가지이다. 태극기와 애국가는 제정과 채택, 공포 등에 대한 확실한 규정과 근거가 있으나 국화로 알려진 무궁화는 뚜렷한 법령 규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국민적 오랜 정서와 애국가 가사에 등장할 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은 창경궁에 왕벚나무를 심었다. 호기롭게 피어난 벚꽃을 구경하는 문화도 한국에 소개했다. 그건 맞다. 해방 후에도 벚꽃 축제는 계속되었으나 축제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잔혹했던 일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은 1983년, 창경궁 벚나무를 베어냈고, 그중 일부는 여의도의 윤중로에 옮겨 심어졌다.

이렇듯 오늘날 벚꽃 구경의 명소로 조성된 곳은 벚나무의 출생에 대한 고약한 혐의가 밝혀진 후, 다시 심어진 곳이 대부분이다. 군항제로 널리 알려진 진해 벚꽃길도 마찬가지이다.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는 백 번이고 동의한다. 그러나 애먼 벚꽃에게 그 책임을 묻고 탓할 일인가. 

고려 시대에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의 판도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고 조선 중종 때에 서경(書經)의 글자를 쓴 족자도 벚나무 껍질로 조각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정도면 벚꽃에 대한 반감을 거두어도 좋을 일이다.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공중파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조기 종영되었다. 방송 2회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흔치않은 일이다. 판타지 사극이라지만 역사적 사실마저 무시하는 자극적 설정이 대중의 분노를 샀다.

'조선구마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태종과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초현실적 악령에 맞서 벌이는 혈투를 그린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방영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첫 방송이 나가자마자 심각한 역사 왜곡과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 옹호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이려니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송 중단 요청이 폭주하고 광고주와 제작 지원 기업을 상대로 한 불매운동으로까지 그 사태는 확산되었다. 결국 기업들이 광고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판타지 사극이라고 해도 역사 속 인물을 다룰 때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데 과도하게 픽션을 가미하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최근 중국이 김치, 한복 등을 중국 문화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된 상황이다 보니 시청자들의 반감은 더 컸을 것이다. 대중 다수가 소비하는 문화는 그래서 늘 신중함이 요구된다.

‘벚꽃’과 ‘조선구마사’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오해와 왜곡이라는 차이를 가진다. 오해는 언젠가 풀리며 진실의 힘은 강하다. 그러나 왜곡은 쾌도난마의 진실규명으로 대응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굳혀진 진실로서 그 위력을 오래도록 지닌다. 조기종영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필요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대중의 감각을 자각하는 행위만으로 존재는 회생된다. 우리는 그간 그러한 사례를 수도 없이 목도했다. 애국심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역사를 왜곡한‘조선구마사’에 분노하시더라도 벚꽃의 만개에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라. 벚꽃, 자랑스러운 우리 꽃이다. 흐드러진 벚꽃의 위로마저 없다면 이 잔혹한 봄날을 어찌 견디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