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前)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 이제 좀 내려놓고 살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빌라 지하방, 화장실도 공용이었던 곳에서 시작해 30년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아이들 출산도 일하느라 지켜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요즘 신혼부부들은 상상도 못할 거다.

항상 미안하고 죄스러워하는 나에게 아내는 “그랬으니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느냐”고 다독인다. 이제 자리를 좀 잡게 되니 힘들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남들은 60세가 되면 정년퇴직을 한다는데 나는 자영업이라 정년이 없다. 

사는 데 정신이 없어 노후대책이라고는 특별히 해 놓은 것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열심히 일을 해야 할지, 이제 좀 내려놓고 살아도 될지. 혹시 머슴 팔자는 어디 안 가는 걸까?

△ 5060세대의 슬픈 자화상… 그러나 운명을 사랑하라

이 땅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거의가 농촌과 벽지 출신이다. 그들 중 절반이 넘는 인구가 도시로 이주했다. 60~70년대 초기 이주자들의 서울 생활은 대부분 변두리 판잣집이었고, 80년대 이후 이주자들은 열악한 빌라 생활이 첫출발이었다. 너나없이 다 어렵게 살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은 컸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어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슬픔과 우울을 담대하게 인내하면 반드시 기쁜 날이 온다는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다. 당시 이발소 액자에 걸린 이 시를 보고 가슴 뭉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렇게 우울한 날들을 참고 견디면서 꿈을 좇아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예전보다 형편은 나아졌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시대의 많은 5060세대들에게 진정 기쁜 날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희망의 미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나이는 들어가고 하는 일은 점점 힘에 부친다. 계속 허리가 휘도록 일할 머슴 팔자인가? 은퇴할 나이는 다가오는데 ‘일이여, 굿바이!’라고 할 형편이 안 된다. 이 시대 5060의 슬픈 자화상, 그 속에 당신이 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이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어려움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는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과연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어려움까지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좀 잔인한 말 같지만 거스를 수 없는 게 운명이다. 사람에게는 그림자만큼이나 떼어내기 힘든 운명의 굴레가 있다. 그러니 운명을 받아들이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

나이 들어도 계속 일을 해야 할 형편이면 해야 한다. 할 일이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하는 것이 뭐 어때서? 은퇴하고 쉬는 것보다 일을 하는 편이 낫다. 다만 일의 강도는 좀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은 은퇴하면 모든 일에서 손을 떼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무슨 일이든 다 하고 있다. 나도 60세에 38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재취업을 했고, 총 42년간의 풀타임 직장생활을 했다. 아직도 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며, 다시 풀타임의 직장이 생긴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란 일이란 게 없으면 다 산 것이나 다름없다.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의 가사를 음미해보면 답이 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그렇다.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삶이 그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삶이란 게 그런 거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실망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지금의 나를,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