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문재인 정권이 급하긴 급했나보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전셋값을 대폭 올려 받은 일로 여론의 지탄을 받자 하루 만에 경질했다. 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아래 공정 정의의 화신인 양 행세하던 인사다. 임차인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임대차 3법’ 시행 이틀 전에 자기 소유 강남 아파트의 전셋값을 14%나 올려 받았다는 것이다. 말썽이 나자 즉각 내보냈다. 서울 및 부산 시장 보궐선거 효과다. 

보선 패색 짙어지자 납작 엎드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연일 사과에 바쁘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분노한 민심’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인상이다.

민주당이 인식하는 민심 이반의 요인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그간 25번이나 부동산 시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집값폭등, 권리침해, 수탈적 조세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은 오히려 규제와 징세의 수위를 높였다. “쉬~, 물렀거라. 촛불혁명 대통령 행차시다!”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예정지 부동산 투기 사건은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문 정권에 대한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위에는 맑아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바닥에 가면 잘못된 관행이 많이 남아있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유튜브에서 한 말이다. 흑석동 투기의혹에 몰렸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그 때문에 자리를 내놨어야 했으면서 지금은 버젓이 국회의원(열린민주당)이 되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발의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임대차 3법’ 발효 한 달 전에 아파트 임대료를 9%나 올려 받았다.

야당을 흉내 내서 다시 묻고 싶다. “이들이 아랫물인가?” 높은 지위에 있는 자신들은 맑은데 지위가 없는 국민들은 아직 흐리다는 이 전 민주당 대표의 인식이 바로 ‘권력의 교만’이다.

이낙연 민주당 공동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31일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가졌다. 

국민의 분노 이제야 깨달았다니

“청년과 서민들은 저축으로 내 집을 가지려는 꿈을 거의 포기하고 있습니다. 내 집이든 전월세든, 이사를 가려면 빚을 더 내야 하는 처지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터에 몹쓸 일부 공직자들은 주택 공급의 새로운 무대를 투기의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오신 많은 국민들께서 깊은 절망과 크나큰 상처를 안게 되셨습니다. 주거의 문제를 온전히 살피지 못한 정부 여당의 책임이 큽니다. 정부 여당은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습니다. 무한책임을 느끼며, 사죄드립니다.”

이 위원장은 그러면서 주택 관련 지원정책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일까? 사죄한다면서 더 공공연히 선심공약을 하는 것을 보면 표 계산에 관한 한 프로 그 이상이다. 영혼 없는 이 사죄에 국민이 또 감동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빛이 역력하다. 

“국민 여러분의 분노가 LH 사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그런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문 정권의 여타부문 실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LH 사태를 포함한 부동산 정책 실패만으로 국한시키려는 의도이겠다.

그래서 ‘영혼 없는 사죄’라는 것이다. 민심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변한다. 민주당은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들의 호소나 비판을 흘려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자기 부정에 여념이 없다. 

문재인 정권 정책의 총체적 난조

정부‧여당이 수립하고 추진해 온 각 부문별 정책들이 총체적으로 난조를 보여 왔다. 경제는 코로나를 핑계 삼아 겨우겨우 실패를 호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교‧안보‧국방 정책의 난맥상은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존속을 우려할 정도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는 집권당의 의회 전횡과 사법부(그 수장)의 열성적 지지가 더해져 ‘3권 분립’이 아니라 ‘3권 통합’의 구도를 보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파국적 국민 분열이 그 살벌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선거에 임박해서 패색이 짙어지니까 호들갑스럽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볼지는 불문가지다. 21대 총선 180석 확보라는 압도적 승리에 도취해 교만을 떤 결과가 민주당 소속 서울‧부산 시장의 도덕적 일탈로 나타났다. 그로 인한 보궐선거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후보 공천을 강행한 이런 정당의 ‘사죄 퍼포먼스’에 진정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진심을 담은 사죄라면 잘못된 정책 수립 및 수행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간에 쏟아져 나왔던 비판과 대안을 깔아뭉개면서 자기들 고집대로만 정책을 만들어 강행해 온 책임자들이 이 상황에서도 건재한 것은 말이 안 된다. 민심의 장벽에 부닥친 정책과 제도의 개정이 필수적일 텐데 이 또한 말이 없다. 그러면서 국민더러 무얼 믿으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