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전(前) 국민일보 주필

국민의힘이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크게 이겼다. 작년 4‧15총선 때 국회의석 60%(180석)를 휩쓸었던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초라한 성적으로 참패했다. 아주 추한 모습을 보이다가 제풀에 나가 떨어졌다. 후보라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선거의 수준을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그 잘못만으로도 그들의 패배는 당연했다. 동정의 여지가 없다. 

특히 서울의 경우 작년 4‧15총선에서 민주당은 41개 의석을 쓸어 담은데 비해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8석을 얻는데 그쳤다.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25개 구 가운데 민주당이 24개 구의 구청장을 차지했다.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은 1개 구에서만 이겼을 뿐이다.

문 대통령 레임덕 가속화할 것

흔한 말로 기울어진, 그것도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18.3%포인트나 앞서면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압승했다.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부산에서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민주당 김영춘 후보를 28.3%포인트 차로 눌렀다. 게다가 두곳의 모든 구(區)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오만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지만 전율할 정도로 무서운 주권자의 심판이었다.

이를 계기로 문 대통령의 레임덕은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 소속 의원의 수가 174명으로 국회를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긴 하다. 그렇다고 레임덕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화할 수는 있다. 겸손해지는 게 우선 과제다. 오만을 털어내고 독선‧독단‧독주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명실상부한 협치를 실천할 때 국민의 분노는 점차 사그라들 것이다.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승복하지 않고 오히려 오기를 부린다면 내년 대선에서도 참패를 당할 개연성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행태로 미루어보자면 문 정권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좌파 정치세력의 교만과 욕심과 독선적 사고방식이 쉽게 포기될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대깨문’이라고 지칭되는 극렬 지지 세력의 경우 ‘혁명’ 욕구에 경도된 인상을 주어왔다. 혁명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타협을 배격한다. 이런 심리적 경향을 순화시키지 못하면 파국을 면할 수 없다.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키기도 한다. ≪순자≫, ≪정관정요≫ 등 중국 고전의 가르침이다. 정권 실세들도 이제는 깨달았으리라 여겨지는데 글쎄….

국민의힘은 오랜 패배의식의 수렁에서 벗어날 계기를 맞았다. 국민이 준 축복이다. 그렇지만 무한정 주어지지는 않는다. 고마운 축복임을 망각하는 순간 민심은 떠난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유권자뿐만 아니라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도 함께 받았다. 무엇보다 20~30대 젊은이들의 지지가 결정적인 승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정치적 정주(定住)세력이 아니다. 실망시키는 순간 떠나버린다. 이들은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판단은 빠르고 결심은 단호하다. 

자유우파 결속 계기 살려가야

당내 경선이나 야권단일화 과정이 무난했던 것이 승리에 큰 몫을 했다. 이 점에서 오 신임 시장은 물론이려니와 당 지도부도 경선에 나섰던 나경원‧오신환‧조은희 전 후보들의 기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잃어선 안 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역할과 기여 또한 특별히 기억되어야 한다. 그의 흔쾌한 단일화 참여와 승복, 그리고 적극적인 협력이 승리의 바탕이 되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각 당이나 후보들이 강조해 왔듯이 이번 선거는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가졌었다. 야권으로서는 대선을 향해 나아갈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갖는 선거였다. 대선 승리의 제1조건은 자유우파 정치세력의 결속이다. 국민의힘이 서울‧부산 보궐선거 성적에 취해서 교만해지면 지지자들은 흩어지고 만다. 

국민의힘은 이제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 대선에 나설 조건이 갖춰졌다고 할 수는 없다. 자유우파 정치세력들의 자기희생적 결속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권 쟁취는 불가능하다. 국민의힘은 당리당략적 계산이 아니라 반문(反文)세력 대동단결의 촉매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야말로 정치사적 사명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만이 야권의 유력 주자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의 등판은 다른 야권 주자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견인한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문 정권과 맞서는 정치인‧정치세력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데 집착하지 말고 경쟁과 협력의 장을 펼쳐 주는 일에 힘써야 옳다.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다.

이제 진정한 유권자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조종당하는 대상이 아니다. 명실상부한 ‘심판과 선택의 주체’로 정치과정의 전면에 나섰다. 이는 대의민주정치의 성숙을 위한 축복이다. 이 축복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 데 모든 정당‧정치세력이 동참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