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 원장.
안태환 원장.

6년의 시간 동안 모친의 치매 병수발로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지인이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나 병환이 깊어지지 않은 건 온전히 가족의 힘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모친의 병환은 일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한다.

집 안의 눈에 띄는 약은 거리낌 없이 다 드시려고 하고 새벽 내내 이방 저 방을 혼미한 정신으로 배회하셔서 가족들은 새벽 내내 잠을 설치기 일쑤란다. 잠깐 한 눈을 팔세면 여기저기 부딪치고 넘어지는 일은 다반사여서 늦은 밤 응급실로 달려가는 전쟁 같은 일상은 지인의 건강하던 얼굴마저 반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부모의 오랜 지병에 효자 없다’는 선인들 말씀에 예외가 있음을 확인시켜준 지인의 효심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옛날에는 치매를 노망이라고 하여 나이가 많으면 절로 생기는 노화 현상이라고 치부했다. 의학이 발달한 근간에는 국민들의 의식도 많이 변화되어 치매는 뇌 질환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치매는 병전에는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 때문에 저하된 것을 말한다. 치매의 전형적인 것은 대뇌 신경세포의 광범위한 손상이며 노인성 치매는 65세 이상 성인에게 나타나는 질환으로서 노화에 따른 뇌의 변화로 단기기억, 추상적 사고, 판단에 장애가 있으며 일상생활의 활동에 어려움 등을 보이는 증상이다.

이러한 치매에는 알츠하이머(Alzheimer) 치매와 혈관성치매 그리고 파킨스(Parkinson) 치매가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질환은 우리나라 치매 환자의 71%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이다. 지인의 모친도 이 질환을 앓고 계신다. 주변을 돌아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성 질환이며 이로 인해 부양하는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아간다. 

영화 ‘더 파더’는 이 같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의 존재에 대한 상실을 다뤘다.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오늘,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인공 앤서니 역을 소화한 앤서니 홉킨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수작이다.

영화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동명 이름인 극중 앤서니의 치매질환을 연기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노년의 무게를 통해 누구도 예외 없이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실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수 십 년에 걸쳐 살아온 존재를 유실해가는 앤서니의 비루하고 애절한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굳이 영화 속 이야기를 대입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더 파더’를 보는 내내 모친의 간병으로 지쳐가는 지인이 떠올랐다. 앤서니의 삶을 들여다보며 영화 속 이야기를 접하는 내내 지인이 감당했을 모진 고통과 자식으로서의 지고지순한 효도의 길이 그 얼마나 위대하고 사람다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영화 속 앤서니의 경우처럼 우리 모두는 노년의 시기에 예상하지 못했던 삶의 장애물에 봉착한다. 그것은 치매일 수도, 가족과의 이별 일 수도 있다. 경제적 문제와 신체의 모든 것들은 온통 결핍 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고령화 사회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가혹한 인생의 뒤안길이다. 노인이 된 이후의 일상이 영화 속 앤서니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치매'는 노령화 사회의 필연적 부담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걸 떠나서, 지인의 경우처럼 많은 후유증들이 노인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인의 어머니는 매번 당신의 나이를 예순일곱이라 말씀하신다.

그 시절에 태산 같던 남편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냈고 그보다 오래 사는 자신이 면구스러워 매번 여든한 살의 나이를 착각하시며 그 시절에 머물러 계신다. 모친의 이런 기억 속에는 장구한 한 여인의 숭고한 역사가 내재되어 있다. 노년의 유실된 기억, 그 누구도 비껴가기 힘든 일이다. 인생에 있어 존재를 상실하는 일만큼 슬픈 병이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