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변수를 맞닥뜨려도 대처 능력이나 결과값은 그간의 내공, 즉 상에 따라 달라진다. 2대에 걸쳐 어언 100년 가까이 장생도라지 하나만 집중해온 ㈜장생도라지는 대부분 휘청댄 코로나 시대에도 내수와 수출 모두 상승했다.

질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구해주는 장생도라지의 힘찬 기운은 기업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지역 대표 향토기업에서 이제 나라를 빛낼 장수기업으로 뿌리내리는 중이다.

▶28억의 빚에서 매출 100억대로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이영춘 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안정된 직장의 대명사인 삼성맨이었다. 삼성테크윈 수석인사과장으로서 6개월 후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그때, 그는 보장된 미래 대신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가승계를 택했다. 

“당시 부친이 사업하면서 진 빚이 자그마치 28억이었어요. 은행 대출 17억에 사채 11억이었는데, 사채 대부분은 친인척끌어왔죠. 해결 못 하면 평생 제가 지고 가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그가 점쳐본 가업승계의 성공 가능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5%의 실체는 분명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건강식품 소재, 요즘 말로 블루오션이랄 게 있었던 것. 이 회장의 부친 이성호 옹이 세계 최초로 취득한 ‘다년생도라지 재배법’ 특허가 그것이었다.

이성호 옹은 열네 살 때인 1944년 지리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온 후 평생을 도라지에 바쳤다. 그는 그날 함께 갔던, 지병으로 몹시 쇠약했던 동네 아저씨가 산에서 오래 묵은 도라지를 캐 먹고 쾌유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 장생도라지 재배와 연구, 오직 이 한 길만 걸어왔다. 

“우리가 나물로 먹는 도라지는 수명이 고작 3, 4년이지만 다른 토양에 옮겨 심은 도라지는 다년생으로 키울 수 있어요. 이 재배법을 연구해 개발한 장본인이 바로 부친이죠. 21년근 장생도라지는 성분과 약리작용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래 묵은 도라지는 산삼보다 약효가 귀하다’는 구전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건데요. 사포닌은 일반 도라지와 6년근 홍삼보다 월등히 많은 32종에 달합니다.” 

다만 부친 이성호 옹의 장생도라지는 집에 있는 금송아지 100마리요, 다이아몬드로 다듬어지지 못한 원석과도 같았다. 고심 끝에 가업승계를 결심한 이영춘 회장은 부친이 발견한 장생은 원석을 가공식품이라는 다이아몬드로 빚었고, 장롱 속에 갇혀 있던 금송아지를 세상에 알려 위기의 기업을 건강하게 살려냈다. 

▶홍보와 연구 투자로 승승장구

가업승계 후 이 회장이 가장 먼저 바로 잡은 건 기업체계였다. 삼성중공업으로 입사해 삼성테크윈까지 21년 동안 삼성에서 익힌 매뉴얼을 장생도라지에 맞게 적용해나갔다. 또, 부친이 구전으로 열심히 전했던 장생도라지의 효능을 잡지와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홍보했다.

소비자들이 효능을 신뢰할 수 있도록 과학적 연구기반도 다졌다. 경상대, 충남대, 부산대 등에 몸담은 식품, 한의학, 의학, 약학 등 다방면의 전문연구원 20여 명을 주축으로 ‘장생도라지연구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20년 넘게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왔다.

현대의학이 밝힌 도라지 효능에 관한 자료 99%가 여기에서 나왔으며, 취득한 특허도 국제특허 10건을 포함해 무려 36건에 이른다.

삼성테크윈 출신인 만큼 항공기 생산방식 공정관리시스템을 변형한 독특한 시스템도 적용했다. 작은 결함도 인명에 직결되는 항공기의 깐깐하고 디테일한 생산 공정 관리를 식품에 응용해 모든 작업을 ‘공정관리 기록서’라는 문서에 의해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오차를 최소화하고 언제라도 제품의 생산 이력을 추적,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 체계를 바로잡고, 제품에 신뢰를 더한 결과는 매출로 나타났다.

“1997년 2400만 원에 머물던 매출액은 가업승계 첫해 10억 1200만 원을 시작으로 20억, 30억으로 불어났어요.

그러다 한때 매출 100억 원을 찍을 만큼 무서운 성장세를 기록했죠. 일본 수출도500만 불에 육박했고, 미국시장에서도 반응이 뜨거웠어요.”

메르스와 사스 등 연 이은 전염병으로 내수경기 위축에 수출까지 저조하면서 성장 그래프가 꺾이기도 했지만, 이번 코로나19는 오히려 성장에 탄력을 받게 했다.

몇 번의 리스크를 극복한 경험이 노하우로 응축된 데다 ‘도라지가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기초연구원의 공식 발표에 힘입어 지난해 10~20%가량의 매출 상승효과를 얻었다.

여기에 수출 호재까지 겹쳐 또 한 번의 전성기가 예상된다. 최근 전국에서 유일하게 산림청의 ‘2021년도 임산물 수출특화시설 확충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하동군에 임산물 수출특화시설을 건립, 장생도라지 가공식품의 해외수출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다음 목표는 기부문화 확산 등 지역사회 봉사

현재 이 기업은 경남 함양, 산청, 하동 등 지리산 자락의 250여 농가와 계약을 맺고 장생도라지를 재배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확한 21년생을 가공해 만든 제품은 진액과 농축액, 분말로 빚은 기환, 젤리, 차, 기능성 화장품, 장생도라지로 빚는 술 등 20여 개 품목에 이른다.

2005년에 지은 사옥 3층에는 이들 제품과 더불어 역사를 집대성한 박물관이 마련돼 있다. 업체의 성공스토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학생들부터 농업 관련 단체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 등 지금까지 3만여 명이 박물관을 다녀갔다. 

“빚더미에 앉은 기업을 회생시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만든 것 외에 의미 있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기업을 맡자마자 식품 공부를 시작해 10년에 걸쳐 석박사를 땄고, 1997년에는 부친이, 2006년에는 제가 신신지식인에 선정되었어요. 또 부친이 김대중 대통령 훈장을 받은 데 이어 저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을 받았죠.” 

기업인으로서 꿈꾸었던 바를 대부분 이루었다는 이영춘 회장은 최근 묵직한 직책 하나를 맡았다.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에 당선한 것. 그는 장생도라지의 건강한 기운에 힘입어 기업을 탄탄하게 성장시켰듯 이번에는 기부문화 확산 등 지역사회를 이롭게 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며 다음 일정을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