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 
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

법규의 모호성과 과잉처벌의 논란을 빚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늘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기업들은 산재사망사고가 터질 경우 중대재해법 1호사건으로 적발돼 사정당국의 시범케이스 고강도 수사를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예방보다 처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별다른 보완없이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망사고 시 사업주에 대한 징역 및 벌금의 하한선은 명시하지 않고 있다. 상한선도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벌금 1억원 이하 인데 반해 중대재해법에는 10억원으로 10배나 높여놓았다. 전세계에서 중대재해에 대해 징역형의 하한선을 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인 50인이상 기업은 지난해말 기준 모두 5만7000여개로 추정된다. 이중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설업종이 1만5000개이고 나머지 업종이 4만2000여개이다. 

불의의 사고나면 사장 형사책임 불가피

기업들은 “1호 처벌은 피하자”며 설연휴 이전부터 생산을 중단하는 곳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산재사망사고가 많은 건설업체들의 경우 법 시행 첫날 대부분 연휴에 돌입하거나 주말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설 연휴 주간 다음주에도 휴가를 갈 것을 현장 직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산재예방 전문인력과 안전보건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로 사장이 형사책임을 뒤집어쓰고 장시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경우 경영 전반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아예 공장을 해외로 내보내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이 법의 모호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재해방지대책 수립 등과 같은 의무사항이 있지만 항목별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식의 표준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강력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경영책임자가 누구이며,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등도 모호하다. 경영책임자는 통상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규정하고 있는데, 경영책임자를 따로 선임한 경우에도 대표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 등이 명확하지 않다.

고의성없는 사망사고땐 면책특권줘야

과실범 형태인 산재사고에 대해 사실상 고의범처럼 처벌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업주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땐 면책돼야 하는데 그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경영진이 안전조치를 잘해도 한순간의 실수로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다. 산업재해는 사기 강도 상해 등의 범죄와는 다르게 무재해를 아무리 결심해도 피할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사실상 고의범처럼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사업장과 사업주가 다르더라도 원-하청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의 중대재해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파견법상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에 대한 지휘,감독을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법은 사고가 나면 함께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법인과실치사법은 법인 등 조직체의 관리운영에 중대한 위반이 있고, 이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법인에 상한 없는 벌금을 부과하지만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다.

사후 처벌 중심으로 돼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업안전 정책방향을 ‘사전 예방’중심으로 바꾸고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영인에 대해선 사고 발생 시 면책특권을 주는 등의 입법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