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탈(脫) 러시아'를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시장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 판매 비중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의 '탈러시아'가 잇따르고 있다. 팀 쿡애플CEO. 사진=CNN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의 '탈러시아'가 잇따르고 있다. 팀 쿡애플CEO. 사진=CNN

 ◇ 애플이어 '탈러시아' 선언 줄이어...엑슨모빌 구글 포드도 동참

 애플은 1일(현지시간)부터 러시아에서 제품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애플은 이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인류의 폭력에 대한 고통을 전세계인들과 공유한다"며 이같은 결정을 발표했다.

 애플은 러시아 내 매장에서 모든 제품의 판매와 배송을 금지하고 전 세계 앱스토어에서 러시아 국영매체 러시아투데이(RT)와 스푸트니크통신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글로벌 기업들에 러시아에 대한 압박 차원에서 전방위적 도움을 요청한 바 있다. 

 거대 IT기업과 에너지 기업들도 '탈 러시아' 행보에 나섰다. 셸과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엑슨모빌 등 주요 에너지 기업들도 최근 러시아에서 빠져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 역시 러시아 국영 언론 매체의 계정이 자사 플랫폼에서 광고나 영리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했다. 

 러시아에 3개 공장을 가동중인 포드도 러시아 파트너측에 당분간 가동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포드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침공과 그 결과로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험을 받는 현실에 우려한다"고 표명했다. 

 미국 보잉사도 러시아 민항 항공사들을 위한 부품 정비 보수유지 서비스를 일시 연기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투자회사들은 글로벌 제조기업들보다 훨씬 앞서 러시아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는 중이다.
 
 미대형연금 컨설팅업체인 '세갈 마르코 어드바이저'의 T J 키스너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서방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자의 다변화밖에 없어 러시아에서 투자금을 인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 사태에 따른 정부 기업의 수출입업계 간담회. 사진=연합뉴스
  우크라 사태에 따른 정부 기업의 수출입업계 간담회. 사진=연합뉴스

◇ 한국정부, 동맹중 유일하게 FDPR 면제 제외되자 뒤늦게 '러 제재'에 동참

 정부가 대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서다 미국의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 면제에서 제외되자 뒤늦게 대러 비판 수위를 올리며 추가 제재를 약속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주요 동맹국 중 유일하게 FDPR 적용 면제에서 제외된 뒤에야 대러 제재 동참을 발표하고 미국과 협상에 나선 정부의 늑장 대응을 둘러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미 상무부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발표한 수출통제에는 수출통제리스트(CCL) 7개 분야 57개 하위 기술 항목에 대해 FDPR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조항이다.  전자(반도체),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해양, 항법·항공전자, 항공우주 등 7개 분야에 관한 세부 기술 전부가 해당한다.

  상무부 통제리스트에 등재되지 않은 일반 소비재는 원칙적으로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최종 용도가 군용인 경우에는 소비재에도 FDPR이 적용된다.

  당장 한국 기업은 FDPR 적용 대상인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할 경우 미 상무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반도체, 컴퓨터, 통신장비 등 ICT 분야 기업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됐다.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 게시판의 '수출통제 및 제재대상 주요국가' 현황.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 게시판의 '수출통제 및 제재대상 주요국가' 현황. 사진=연합뉴스

 우왕좌왕하고 있는 정부와 달리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직간접 개입에는 다소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은 러시아 압박을 위한 판매 금지나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등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로선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에 위치한해당 공장서 가전과 TV를 생산 중이다. 우크라이나에는 판매법인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생산중이다. 

 한국 기업이 섣불리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은 러시아 판매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에서 세탁기, 냉장고 등 주요 가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경우 러시아 시장 내 점유율이 30%로 1위다. 

 특히 애플 같은 경우 러시아 현지 공장이 없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현지 공장이 많아 제재 동참에 현실적 어려움이 많을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 러시아 수출 품목에서 25%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차는 과거 러시아가 어려울 때 의리를 지켜 현지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어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현대차는 오는 5일까지 가동이 중단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상황도 서방의 제재 동참이 아닌 '부품 공급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되며 폭스바겐, 볼보,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잇따라 러시아 수출을 중단하고 나섰다. 다만 이들업체는 러시아 판매 비중이 미미한 만큼 현대차 등과 달리 리스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편 정부는 미국의 대(對) 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인 '해외직접생산품 규칙(FDPR)' 면제 대상에 우리나라를 포함하기 위한 협상에 조만간 나선다. FDPR는 미국 밖에서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달 24일 미국 정부가 발표한 7개 분야 대러시아 수출통제 조치에 포함됐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선 유럽연합(EU) 27개회원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 32개국은 FDPR 적용 예외 대상으로 발표했으나 우리나라는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