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금융당국의 고강도 가계대출 총량 규제 방침에 따라 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금리를 올렸던 시중은행들이 최근 3개월 연속 가계대출이 감소세를 보이자 대출 문턱을 다시 낮추기 시작했다.

특히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이 가장 먼저 조였던 전세대출의 한도 및 신청 기간 등의 요건을 이전 수준으로 복원한 가운데 KB국민·신한·하나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재빨리 검토에 들어가면서 전세대출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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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 전세대출 한도 상향…국민·신한·하나 등도 검토 중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임대차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이내’에서 ‘임차보증금의 80% 이내’로 상향 조정했다.

예컨대 이전에는 전세값이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른 경우 증액분인 1억원 만큼 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전세대출이 없는 세입자의 경우 6억원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해진 셈이다.

전세대출 신청이 가능한 시점은 더 느슨해졌다. 신규 임대차계약서상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전세대출이 가능했던 규제도 풀어 입주일과 주민등록전입일 가운데 이른 날로부터 3개월 이내면 전세대출 신청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꿨다. 다른 곳에서 돈을 융통해 먼저 전셋값을 내고 추후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써 반드시 전셋값 잔금을 치르기 이전에 전셋값 오른 만큼만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묶었던 규제가 모두 풀린 셈이다. 우리은행은 또한 막았던 1주택 보유자의 비대면 전세대출 신청을 허용하고, 주택담보대출 신규 대출자에 한해 오는 5월 말까지 우대금리도 부여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의 선제적 행보에 KB국민·신한·하나 등 다른 은행들도 전세대출 요건 완화와 관련해 검토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해 10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을 시작으로 소매금융을 취급하는 국내 17개 은행 모두 협의를 통해 전세대출 한도와 신청 기간 등의 요건을 강화한 바 있다.

이는 실수요 위주인 전세대출에 대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하다는 점을 악용해 부동산이나 주식 등 투기 용도로 쓰는 사례를 원천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약 5개월 만에 선제적으로 전세대출 문턱을 다시 낮추면서 다른 시중은행들 역시 전세대출 요건을 이전 수준으로 원상복귀 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 대출 문턱 낮추는 은행들…“총량관리 안정적…이자수익 감소 우려”

지난해 하반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발이 묶여 대출 중단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은행권은 새해 가계대출 총량관리 한도가 초기화됐음에도 ‘가수요’ 현상 등을 우려해 한동안 보수적인 대출 영업을 지속해 왔다.

다만 최근에는 기조가 확연히 달라졌다. 주담대와 신용대출에 이어 전세대출까지 한도를 늘리고 금리를 낮추는 등 은행들이 걸어 잠갔던 빗장을 점차 풀고 있는 추세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3개월 연속 줄어들면서 오히려 올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자 대출 늘리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대출수요 급감 등의 영향으로 총량관리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대출금리 빠르게 오르고 있는 만큼 대출 영업을 정상화하더라도 이전처럼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은행권 설명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최근 가계대출 잔액 추이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어 총량 증가율 관리에 여력이 생긴 만큼 이제는 다시 대출을 늘려야 할 때로 보고 있다”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최근 대출 이자 부담도 훌쩍 커져 규제를 다소 푼다 해도 이전처럼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총량관리 폐지 등 대출규제 완화 움직임이 실제로 포착되고 있는 점도 은행들이 다시 가계대출 영업에 적극 나서는데 한몫한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핵심 수익원인 이자이익 규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지만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맞춰 관리를 강화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가계대출이 너무 줄어 고민인 상황”이라며 “특히 상반기에 신규 대출을 많이 늘려야 이자이익 확보에 더욱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가계대출 영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