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정부가 개별 기업 노조의 집단탈퇴를 막는 상급단체 규약을 손볼 모양이다. 고용노동부는 자유로운 노조의 가입과 탈퇴를 방해하는 ‘독소조항’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들은 내부 규약을 통해 산하 단위노조의 집단탈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탈퇴를 시도하는 노조(지부,지회 등)에 대해선 임원제명, 소송제기 등을 통해 무력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산별노조 내부규약이 위법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추진중이다.

고용노동부는 당초 포스코지회의 탈퇴신고를 반려하면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고용부의 조치에 문제가 많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해 12월 포스코지회가 민노총에서 탈퇴하려 하자 포스코지회 임원 3명과 대의원 4명을 제명했다. 이에 맞서 노조 집행부는 총회를 통해 탈퇴안을 투표에 부쳤고, 69.9%가 찬성해 탈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고용부는 포스코지회의 금속노조 탈퇴 신고를 반려했다. 제명당한 노조 집행부가 탈퇴 투표 총회를 소집했는데 그게 금속노조 내부규약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되면 민주노총이 막가파식 노동운동을 벌이는데 식상해 개별노조들이 상급단체 탈퇴를 하려고 해도 불가능하게 된다. 탈퇴를 위한 총회를 소집하려는 노조 집행부를 사전에 제명시켜 버리면, 총회 자체가 원인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고용부가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 규약의 집단탈퇴 금지 조항 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틀은 것은 금속노조 내부규약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조가입과 탈퇴를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6년 대법원의 발레오전장 판결을 근거로 하고 있다.

당시 자동차 부품업체 발레오전장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있다가 2010년 6월 조합원 총회를 열어 민노총을 탈퇴하고 개별 기업노조인 발레오전장 노조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노사분규로 직장폐쇄가 장기화되자 생존권에 위협을 느낀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강경노선에 반대하며 집단으로 탈퇴한 것이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발레오지회장이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집단탈퇴는 금지돼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들의 결사의 자유, 노조결성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판단으로 노조의 집단탈퇴와 같은 조직형태 변경과 관련해 근로자의 자주적·민주적 의사결정을 존중한 판결이다.

정치권에서도 집단탈퇴 방해 금지를 노조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2일 일명 ‘민노총 탈퇴 방해 금지법’이란 노조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노조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정작 탈퇴를 못 하게 막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노총 집단탈퇴금지 조항과 관련, “조폭 세계에서 탈퇴하려면 ‘손가락 하나 자르고 가라’는 식의 공포 분위기마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지금 현장에는 상급단체 탈퇴문제를 높고 갈등을 빚는 곳이 많다.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조는 탈퇴를 선언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노조를 상대로 무효확인과 수억원대 조합비 청구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무금융노조는 한국은행 노조와 금융감독원 노조가 2010년 조합원 총회를 통해 탈퇴를 결정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밀린 조합비를 납부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가입과 탈퇴에 있어 자발적 의사가 존중돼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이를 무시하고 내부규약을 이유로 ‘조직의 논리’를 강요한 것이다.

노동전문가들은 노조의 집단탈퇴 금지가 사라지면 거대 기득권 노조 위주의 노동운동 관행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독선적 노동운동을 저지하기위해선 사법부와 정부당국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자유 원칙에 입각해 근로자의 노조선택권을 존중하는 판단과 정책의 틀을 유지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