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를 비롯 자동차(전기차), 철강 등의 업계가 미국의 인플레인션 감축법(IRA)에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이하 CRMA)이라는 겹악재에 처하게되면서 시름이 깊어질 조짐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 견제용 글로벌 공급망 규제 정책인 IRA를 꺼내들면서 원자재 수급에 비상이 걸린 배터리 및 소재 기업들은 '이중고'를 우려하며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14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EU가 이날(현지시간) 발표한 중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 구축을 위한 CRMA 초안과 함께, 이와 비슷한 맥락의 '기후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초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에 발표된 네용이 초안 수준이라고는 하나, 드러난 CRMA의 내용은 IRA 못지 않게 우리 기업들에게 앞으로 유럽 수출 등에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된 CRMA 초안의 핵심은 △ 유럽 회원국 내에서 원자재를 10%를 생산해야 하고, △ 역내 전략 원자재 광물의 채굴 물량을 EU 연간 수요의 10%와 가공을 40%, △ 현지에서 리사이클 비율을 15%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이 같은 정책을 총괄할 '유럽 핵심원자재위원회'도 준비 중이다. 

우리 기업은 물론 다른 나라 기업들도 EU가 현재 배터리 관련 규제를 시행 중인 상황에서 CRMA의 도입은 이중규제 소지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자유무역기구(WTO) 체제에도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CRMA가 미국의 IRA와 함께 EU 교역국들의 '이중고'가 될 수 있다는 것.

SK넥실리스는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스볼트 본사에서 2024년부터 5년 간 SK넥실리스 폴란드 스탈로바볼라 공장에서 생산한 이차전지용 동박을 노스볼트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자료사진=SKC)
SK넥실리스는 지난 2월 1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스볼트 본사에서 2024년부터 5년 간 SK넥실리스 폴란드 스탈로바볼라 공장에서 생산한 이차전지용 동박을 노스볼트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자료사진=SKC)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유럽한국기업연합회(KBA 유럽) 등 관련 단체들이 이미 EU에 CRMA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상태다.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현재 모니터링 중"이라며, "교억 관련 허들에 대해 일개 기업이 대응하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치권 등에서 적극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미 업계 안팎에 미국의 IRA 학습효과가 있는 배터리 업계는 물론, 소재 기업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U와 미국의 규제 남발로 인해, 향후 또 다시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교란이 빚어질 경우 중소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배터리 소재 기업 관계자는 "(EU의 CRMA가) IRA 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호환마마가 따로 없지만, 우리로선 이에 대해 현재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현실이고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