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윤기설 경제학박사/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주 52시간제 개편이 여론에 휘둘리며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지난 6일 입법예고한 개편안을 놓고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부처의 입장이 서로 다르게 발표되면서 국민들은 그동안 큰 혼란을 겪었다.

노동계와 야당, 일부 언론에 의해 ‘최대 주 69시간’으로 개편안에 대한 ‘개악 프레임’이 씌워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주 60시간 근로는 무리”라고 지적하면서 근로시간제도의 전면 재개편을 지시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했던 20일엔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라는 의미”라고 말을 바꿨다.

대통령실에서도 “대통령의 진의가 왜곡됐다”며 “주 60시간 이상에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냈고 윤대통령은 21일 또다시 교통정리에 나서 주 60시간내에서 근로시간을 유연화하겠다고 못 박았다.

주 52시간제 개편안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윤 정부가 공들여 온 노동개혁 1호 법안이다. 지난해 7월 개편작업에 착수해 8개월에 걸쳐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개혁안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근로시간제도의 어떤 부문(what)을, 왜(why), 어떻게(how) 개편해야 하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그 내용을 인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근로시간제에 대한 방향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이 개혁에 대해 다소 안이하게 생각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수 없다.

특히 MZ세대 노조가 반대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입법예고한 정책을 하루 아침에 뒤바꾼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양대노총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며 추진했던 개혁을 MZ노조가 반대한다며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은 유연화와 자율성 확대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바꾸고 시장원리에 맞게 자율성을 확대함으로써 생산현장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가 잘못 전달되고 상황이 꼬인 것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홍보가 잘못되고 노동계와 야당의 선동 프레임에 걸려든 탓도 있다. ‘일이 몰릴 때 몰아서 하고 일이 적을 때 푹 쉬자’는 정책 홍보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악법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번 개편안을 주도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좌장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주69시간이란 숫자에 갇혀 논의가 완전히 왜곡됐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특정 주에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권 교수는 연 단위로 따지면 평균 주 48.5시간만 일하게 돼 현재의 주 52시간 보다 근로시간 총량이 오히려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중심으로 구성된 MZ세대 노조가 윤정부 개혁의 가늠자 역할을 한데 대해선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헌법개정보다도 더 어렵다는 노동개혁을 성공시키려면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자 노동자들의 집합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의견 표명에 갑자기 개혁의 의지가 꺾인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선다.

현재 근로시간제도는 경직성이 너무 강해 기업들은 일감이 밀려들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근로자들 역시 일을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근로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투잡을 뛴다”는 근로자가 지난해 54만6000명으로 사상 최대에 달했을 정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동개혁,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개혁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벌일수 있었던 것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기때문이다. 지금까지 윤정부 출범이후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근로시간 개편이 첫단추도 끼우기 전에 우왕좌왕하는 현실을 보면서 노동개혁이 제대로 성공할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