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정치에서 도덕률이 배제되면 어떻게 될까? 도덕성, 도덕적 고민이 없는 정치인은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도덕률의 울타리를 넘어버린 정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도덕성과 도덕적 고민이 없는 정치인의 모습은 그 정글의 포식자 형상일 게 틀림없다. 
정치는 인간사회에서만 성립된다.

정치인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을 지키며 더 나은 상태로 이끌어갈 책임을 진 리더다. 당연히 사회의 수호자(guardian) 역할이 요구된다. 흔히 비유되듯 수호견(guardian dog)으로서 책무를 다해줄 것으로 믿어서 양떼(국민)가 그를 선택하고 따르는 것이다. 

수호견인가 정글의 포식자인가

그냥, 굶어가면서 지키라는 게 아니다. 주인 겸 피보호자인 국민이 합당한 보상을 한다. 그게 너무 적다고 여겨지면 그 책임을 맡지 않으면 된다. 일단 맡기로 했으면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 울타리를 벗어날 경우 법률이라는 강제규범의 지배를 받게 된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민주법치주의의 제1원리다. 도덕률을 어긴 정치인은 수호자가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된다. 마땅히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 유지의 제1조건이다.

수호견이 사명감이 아니라 욕구에 휘둘리게 될 때 포식자의 본능이 발동된다. 양의 고기를 탐하게 되는 것이다. 지켜줘야 할 양떼를 먹잇감으로 삼게 되면 안락의 새 세상이 열린다. 수고스럽게 목장을 뛰어다니며 양들을 풀밭으로 안내할 필요도 없고, 늑대들과 맞서는 위험을 감수해야할 의무에서도 해방된다. 더 살찐 양을 고르고 그 먹잇감 앞에서 세상에 없이 다정다감한 미소를 짓는 약간의 수고만이 요구될 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최대 관심사는 뭘까? 물어보나 마나 자신의 사법리스크다. 어떻게 하면 거기서 벗어나느냐로 날마다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대선에서 지고 바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엉뚱하게도 정치적 출신지역을 피해가면서) 강행하고, 당 대표직을 기어이 챙긴 배경도 달리 있을 리 없다. 그 덕에 그는 법무부가 제출한 체포영장 동의안을 국회 표결로 피할 수 있었다. 주눅 들기는커녕 연일 정권 측을 상대로 큰소리 치고 조롱과 조소를 이어가고 있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오라를 피하기 위한 잔기술(같은 당 김의겸 의원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구사에 바쁘다. 전에 쓰던 휴대전화는 프랑스에서 폐기하고 귀국해서 새로 개통한 전화기는 초기화해서 검찰에 제출했다. 사건 관계자들의 검찰 진술 내용이 언론에 잇달아 보도되자 검찰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라며 “고소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변호사 신분을 자랑하는 건가?

노웅래 의원(같은 당)의 경우도 부정한 돈을 받아 챙겼다는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으나 재주 좋게, 운 좋게 피했다. 민주당이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밑자락 깔기 겸 예행연습으로 그에 대한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돈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됐다”고 했음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머릿수의 힘을 과시한 것이다. 그게 정치부패 조장행위임을 알았을 것이면서 주저함이 없었다.

매일 라면’ 의원 일확천금 스토리

김남국 의원(같은 당)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캠프에서 수행실장을 맡은 인연 때문인지, 유난히 이 대표를 감싸고 두둔하는데 열의를 보였다. 그 전에는 조국 전 법무장관을 위한 대(對)검찰투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2020년 신고재산이 8억3241만원이었는데 올해는 15억 3378만원을 신고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재술이라고 하겠는데, 알고 봤더니 엄청난 가상화폐 부자더라고 한다. 그 액수가 점점 늘어 최고 87억 원에까지 이르렀다. ‘구멍난 운동화’ ‘매일 라면’ ‘한 푼 줍쇼’ 등으로 가난을 호소하던 김 의원의 재산불리기 기술은 훗날 전설로 기록될 만하다. 

박주민 의원(같은 당)은 ‘거지 甲’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거지 중에 상거지’다. 후원금 모금 포스터에 목불인견의 상거지 박 의원이 ‘돈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그처럼 지저분한 얼굴로 분장하고 후원금을 호소해도 되는가 모르겠다. 그런데 그가 올해 신고한 재산은 15억2631만원이다. 2016년 신고액은 5억2923만원이었다. 

장경태 의원(같은 당)은 40세의 청년 당 최고위원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 집을 찾아가 안고 격려한 것을 두고 ‘빈곤포르노’ 운운하는가 하면 조명을 동원해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대통령실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명’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까지 이를 거들어 “나도 고발하라”고 나섰다.

장 의원은 2020년 아버지 재산에다 자신의 재산 1000만원을 합쳐 2억8100만원을 신고했다. 그는 ‘흙수저’를 자처해왔다. 그는 작년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아직도 지역구인 동대문구 소재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오리지날 흙수저”라고 자신을 소개 혹은 선전했다. 그가 올해 신고한 재산은 7억233만원이었다.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이다. 

장 의원은 여전히 꿋꿋하다. 8일 한 라이오 방송에 나가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김 의원이 찢어진 운동화를 공개하고 돈이 없어서 호텔 못 가고 모텔 간다면서 후원까지 요구해 금방 후원금도 찼다. 부끄럽지 않으냐?”(허)
“가진 것은 죄가 안 되는데 검소하게 사는 것은 죄가 되냐.”(장)

검소는 상찬을 받아야지 죄가 될 리 없다. 다만 장 의원이 김 여사를 공격하며 내질렀던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빈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나 영상)로 후원금이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구토감(嘔吐感)을 호소하는 것이다. 

상거지 행색으로 구걸하는 의원 

그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도 SNS언쟁을 벌였다. 배 의원은 9일 페이스북에 김남국 박주민 장경태 등의 이른바 ‘가난 마케팅’ 관련 기사와 함께 “빈곤 포르노의 표상이 무엇인지 정치권이 몸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국민 누군가의 상실감을 후벼 파는 정치판의 몹쓸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날 장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되받았다. 

“무식한 배현진 의원, 빈곤포르노가 뭔지도 모르나. 김건희 여사가 본인이 가난하다고 했나. 아동의 가난과 질병을 이용해서 지적당한 것이다.”

자신이 가난하니까 후원금 보내달라는 것은 빈곤포르노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는 것은 빈곤포르노라는 말인 모양이다. 김 여사의 심장병 어린이 보듬기는 무엇엔가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들의 ‘가난 팔이’는 애국애민의 충정이었다는 뜻인가?  

‘유식한 장경태’가 보기에 배 의원의 어떤 점이 무식한가? 자신의 ‘빈곤 포르노’ 발언과 관련해서는 “단어 자체가 충분히 사전적·학술적 용어”라고 설명(22년 11월 16일, cbs라디오)했던데, 그 ‘학술적 용어’의 용법과 용례에 대해서는 양 의원 나름으로 기준을 정해두고 있는가?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가 원래 외설적 의미로 쓰여 온 것을 자신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유식하시니까! 그래서 그 표현을 자신이 남한테 할 때는 신이 났는데 남이 나를 가리켜 할 때는 참기가 어렵더라고 말하자는 것 아닌가? 어쨌든 자신들의 언행을 ‘빈곤 포르노’라 한다고 격하게 반응했으니, 그게 아니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게 예의다. “무식하다”고 타박만 하지 말고! ‘빈곤 앵벌이’는 어떨까? ‘빈곤 경연(競演)’ ‘빈곤 타령’ ‘빈곤 모금’ ‘빈곤 구걸’ ‘빈곤 도둑질’ 등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하나 골라주면 좋겠다. 아니면 더 삼빡한 용어를 만들어 주든지…. 

이참에 꼭 하나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다. 민주당의 모모한 사람들, 돈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가? 그것도 부정한 돈에…. 돈 벌이를 하려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어 힘이 생기니까 돈 욕심이 부풀어 오른 것인가? 인간적으로 솔직히 고백해 주면 안 될까? 당을 한 손에 장악하고 권세를 휘두르는 이 대표부터 왜들 그렇게 돈 문제에 함몰되어 허우적대는 겁니까? 한 손엔 친히 ‘정의’라고 쓴 깃발을 흔들면서 다른 손으로는 ‘검은 돈’ 세기에 바쁜 분들이 대답 좀 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