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지성용이라는 가톨릭 신부가 있는 모양이다.

“누구든지 욕망이 없는 자, 김남국에게 돌을 던져라.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는가. 김남국은 힘내라. 민주당 개혁을 위해 끝까지 싸우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살아날 것이다.”

그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언론이 전하는 글의 한 대목이다. 사제의 말이라기엔 너무 괴이하다. ‘아, 그런 신부도 있는가보다’ 여기기는 하지만 그의 사제라는 신분이 아주 낯설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라는데 지 신부는 어떤 정의를 구현하려고 나선 것일까? 하느님 말씀을 망령되이 흉내내면 벌 받는다(정치신부들에 질려서 한동안 냉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냉담 중이어도 하느님 말씀을 가지고 말장난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본업 팽개쳐도 잘못이 아닌가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의원이다. 특권‧특혜‧온갖 예우에다 넘치는 보수와 과한 지원인력까지 법으로 보장된다. 곁눈 팔지 말고 의원으로서의 책무에만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뜻으로 주어지는 대가다. 의원의 ‘겸직금지’ 규정을 국회법에 특별히 두고 있는 까닭도 다르지 않다. 돈벌이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인가? 꼭 답을 듣고 싶다면 각자의 양심에 물어보시라.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는가”라고 지성용 씨는 따지듯 물었다. ‘진보’라니? 어떤 뜻의 ‘진보’인가? 그 같은 행태도 ‘진보’의 범주에 속하는가? 그런 ‘진보’ 해서 뭐하게? 아니면 ‘좌파’의 동의어로 습관처럼 쓰고 있는 건가(아마도 좌파적 이념을 가진 인사인 듯하다). 어쨌든 진보가 돈벌이를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본업은 팽개치고 돈벌이에만 매몰돼 있었기 때문에 지탄을 받고 있는 것 아니던가? 

김 의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중요한 회의 중에도 코인거래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는 게 동영상을 통해 확인됐다. 그 자신도 ‘국회 상임위 중 코인 거래’에 대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 15일 김어준의 유튜브에 출연해 “상임위 시간 내냐, 시간 외냐를 떠나서 제가 너무 잘못했다”고 토로했다. 끝까지 좀스럽게 ‘시간 내냐 시간 외냐’운운했지만 직업윤리를 심대하게 위반했다는 것은 인정한 셈이다. “화장실이나 휴게실에서 했다”는 개그 같은 해명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뱉어낸 헛소리였다 치고…. 

1년에 1400회 거래를 할 정도였으면 언제 시간이 나서 본업에 관심을 둘 수 있었겠는가. 이재명 대표 방패노릇하기, 민주당 내의 ‘7인회’와 ‘처럼회’ 멤버 역할 다하기에 뺏기는 시간 까지 감안하면 본업은 팽개칠 수밖에 없었을 법하다. 작년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이모(李某) 교수’를 ‘이모(姨母) 교수’라고 우기는 개그 한마당을 펼친 게 그 때문이었으리라는 추론은 설득력이 있다. 멍한 정신으로 보좌관이 쥐어준 문건을 무기삼아 공격에 나섰으니 무슨 실수인들 안 저질렀겠는가(최강욱 의원이 ‘법인法人 한**’를 ‘한동훈 딸 한**’이라고 주장한 배경도 궁금하지만).

정치현안에 과몰입하는 사제

혹 잊어버렸을까 해서 국회법이 정하고 있는 의원선서 및 품위유지 의무를 옮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국회법 제24조)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동법 제25조)

이를 위배하는 의원은 스스로 의원직을 내놓거나 국회의 의결로 내보내야 한다. 그게 정의다. 지 신부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다. “욕망이 없는 자, 김남국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자못 호기롭게 일갈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먼저 돌을 던져야 할 사람은 지 신부 말고는 없을 듯하다. 사제직에 있으니 ‘욕망’(사욕私慾이든 사욕邪慾이든)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가 먼저 던져야 옳은 것 아닌가?

지 신부 자신도 김 의원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이 말했다. 잘 아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살아날 것’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사제가 정치현안에 대해 과몰입하는 것도 엉뚱하려니와 상임위 중의 ‘돈벌이’를 정당화시키기에 하느님 말씀까지 등장시키는 것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신부님, 어디까지 가고서야 멈추시려는가요?

그 정의감으로 푸틴의 잔인한 우크라이나인 학살에 대해서는 왜 말은 않는지 모르겠다. 해방신학의 본고장인 남미 주요 국가들의 독재자들이 좌파 포퓰리즘에 취해 자국의 경제를 파탄 낸 데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도, 말을 안 하니 짐작하기 어렵다. 수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쓰레기 처리장을 뒤지거나 국경을 넘어서까지 유리걸식하게 한 책임에 대해서도 준엄하게 꾸짖을 법한데 침묵으로 일관한다. 김일성 3대의 잔혹무비한 살인정치에 대해서도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사제들의 태도는 한결같이 묵언(默言)이다. 

민주당 개딸들의 탈도덕 선언

김 의원의 돈벌이를 정당화시킴으로써 전체 의원들에게 코인 투자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야 말로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여기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지 신부가 먼저 김 의원에게 돌을 던지시라. 다른 사람들은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돌을 던질 자격이 없으니까.

소위 ‘개딸들’도 김 의원 비호에 나섰다. 17일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따르면 ‘저희 민주당원은 김남국 의원의 출당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청원(지난 12일)이 게시돼 1만3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의 동의를 얻었다는 언론보도다. 청원 게시자는 “김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투자를 한 것이고 그에 대한 수익을 벌어들였을 뿐”이라고 했다. 도덕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인식이다. 정치에서 도덕성을 빼버리면 무엇이 남는다고, 이 청원자와 동의자들은 생각하는 것일까? 민주당이 마침내 ‘탈윤리의 정치, 탈도덕의 시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는가.

더불어민주당이 김 의원을 뒤늦게 국회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키로 했다. 윤리위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도덕성, 직업윤리성의 기준이 된다는 점을 윤리위원 모두가 명심할 것이 요구된다. 국회와 국회의원의 타락을 윤리위의 이름으로 공인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징계하는 시늉만 하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없지는 않다. (선례에 따라) 좌고우면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21대 국회 임기만료로 징계안 자체가 폐기되게 할 가능성은 더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특위 위원들의 추상열일(秋霜烈日) 같은 사명감과 기개를 기대하고 싶다. 그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