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했다. “아, 이 대표도 저런 말을 할 줄 아는구나!”

이건 새로운 발견이다. 그가 말했다. “민생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나라 안보가 백척간두다.”

안보가 백척간두라는 걸 알면서

경제가 파탄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물론 국민이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마음 맞춰 함께 나아가면 반드시 극복될 것으로 믿어진다. 사실 이 정도 어려움은 우리가 그동안 수도 없이 겪었던 난관 중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원내 제1당의 대표가 ‘파탄’ 운운할 것까지는 없겠다. 경제혼란으로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정치적 타격을 안길 심산이 아니라면….

이에 비해 ‘안보 위기’는 그의 표현 그대로 ‘백척간두(百尺竿頭)’다. 우리의 안보상황은 백 척 높이의 장대 끝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어제 오늘 새롭게 조성된 상황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고 시험하기 시작한 이래 늘 그래왔다. 그런데도 우리 안의 좌파세력은 안보 강화에 아주 소극적이거나, 심지어 부정적 태도로 일관했다. 위기의 일상화가 안보 거부감을 초래한 측면이 있지만, 민족화해, 민족공조, 민족자주, 민족통일 등의 구호가 국민정서를 휘어잡은 탓이 더 컸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김영삼은 199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아주 생뚱맞은 ‘민족예찬론’이었다. 비록 김일성을 대화에 끌어내기 위해 한 말이라고 해도 너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느낌을 주는 언어의 유희였다. 좌파의 특화된 ‘민족팔이’ 화법을 김 전 대통령이 어떻게 취임사에까지 끌어들이게 됐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지만 어쨌든 이런 인식이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초래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대중은 2000년 6월에 5억 달러(이중 5천만 달러는 현물지원)를 주고 평양에서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했다. 2003년 6월 25일 송두환 특별검사는 “현대그룹이 대북 경제협력사업권을 획득하는 대가로 4억 달러(현금 3억5천만 달러와 평양체육관 건립 등 현물지원 5천만 달러)를 지급하고 정부도 정상회담 대가로 현금 1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1억 달러도 결국 현대에 떠넘겨졌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돈을 지불하고서야 ‘통일문제의 민족 자주적 해결’ 등 5개항의 ‘6‧15 남북 공동 선언문’이라는 문건을 받아낼 수 있었다.

북한 김정은을 향한 간절한 구애

노무현은 2004년 11월 13일 미국 LA 소재 국제문화협의회(WAC) 주최 오찬에서 연설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고 우기는 것과 관련, “많은 경우 북한의 주장은 믿기 어려운 게 많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는 주장이라는……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흥발언이었다. 2007년 10월 4일 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문재인은 2016년 10월 16일(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자신의 페이스북에 ‘뭣이 중헌디?’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올렸다. 

“전쟁의 시기에는 전쟁의 논리로 평화를 심판하고 대결의 시대에는 대결의 논리로 대화를 심판하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합니다.……전쟁은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무덤이며, 평화는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요람입니다.(후략)”

이런 인식을 가진 그는 김정은을 향한 간절한 구애로 임기 5년을 다 보냈다.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는 상대와의 평화는 우리의 일방적인 굴종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끝없이 김정은의 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평화를 보장하는 최고의 안보정책일 것이었다. 그건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적 마취정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안보걱정은 우리를 위한 것인가, 김정은을 위한 것인가?   

“집회 때문에 수출이 무너졌나? 집회 때문에 민생이 무너졌나? 집회 때문에 민주주의가 파괴되었나? 집회 때문에 무슨 문제 생긴 것이 있나?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정권의 실정이 가려지지는 않는다. 국정을 위임받았으면 민생과 경제, 안보 문제에 더 집중하시라.”

이 대표가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정부 여당이 이날 불법집회 근절, 심야 집회‧시위 금지를 위한 법 개정을 논의한데 대한 반발이고 반격이었다. 민노총의 극렬한 노동투쟁이 산업 활성화의 심각한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투다. 민노총의 노숙집회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도 모르쇠다. 

집안 문제 덮으려 온 산에 불 놓기

‘차로 점거’ ‘금연구역 흡연’ ‘쓰레기 무단 투기’ ‘노상 방뇨’ 등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가? 이야말로 민주주의 파괴 행위임을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가? 이 대표에겐 노조의 이 같은 과격한 행태가 파탄지경에 이른 민생경제를 살리고 백척간두에 놓인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길이라고 여겨지는가?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노조집회를 비호하겠다는 것인가?

이 대표는 자기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의 상태부터 들여다 볼 일이다. 이 대표 자신이 다양한 혐의와 관련해 계속 법정에 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송영길 전 대표와 그의 조력자들은 지난 21년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만들어 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그 당의 김남국 의원은 가상화폐 거래 논란을 불러일으켜 국민의 넋을 빼놨다. 그는 특히 청년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허탈감 상실감 배신감을 안겼다. 

소위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젊은이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수천만 원씩의 보증금을 떼인 것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버렸다. 그런데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온갖 대우와 혜택을 다 누리면서도 투자 재원이 모호한 코인 자산을 많게는 100억 원까지 보유했었다고 한다. 이야말로 이 대표가 말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의 전형이다.

민주당의 입법전횡도 다를 바 없다. 검수완박법(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더니 양곡법 개정안‧간호법 제정안도 거침없이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이 이들 법률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23일 노랑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다시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문제를 덮기 위해 온 산에 불을 놓는 격인데, 다수 의석의 힘으로 입법과정을 농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가 아니면 뭔가. 이렇게 하면 국가안보는 백척간두의 위험을 벗어나 안정‧강화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인가?

초선의 이 대표가 입법권을 마음껏 농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민주당은 험한 고갯길을 롤러코스트처럼 오르내리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이 대표는 가속 페달을 한껏 밟아댄다. 달리고 있는 중에는 그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한다. 속된 표현으로 ‘실실 쪼개면서’ 국회를 ‘갖고 노는’ 것으로 기분풀이가 될지는 모르지만 과속의 끝에는 파국이 입을 벌리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 폭주열차에는 이 대표 자신도 타고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