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 2호기[방위사업청 제공. 연합뉴스]
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 2호기[방위사업청 제공. 연합뉴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일줄 몰랐다. 진짜 그 뻔뻔함에 징글징글하다."

탁월한 가성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4.5세대 한국형 초음속전투기 KF-21(보라매)의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의 잇따른 약속 위반에 대한 지배적인 반응이다. 

인도네시아는 연체 중인 8000억원대의 분담금 납부 계획을 지난달 말까지 통보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 확인 결과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 

이 사안의 '키맨'은 프라보워 수비얀토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적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후보인 프라보워는 무기 도입 등에 관한한 '독주'로 일관한다. 민간 출신인 대통령은 무기 도입 등 군사 문제에 관한한 아무런 힘이 없다는 얘기다. 

프라보워는 지난달 26일 언론에  "분담금 지불 약속을 이행하겠다"며 "한국 정부와 여전히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도 국방예산에 분담금 납부 예산이 편성됐는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한 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확약 역시 '말장난'에 그치고 말았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0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0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2014년 한국과 4.5세대 전투기 KF-21기 생산비 분담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이 사업에 뛰어든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회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결국 인도네시아를 선택했다. 인도네시아를 제외하곤 다른 참여국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합의서에 따라 한국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각각 60%와 20%를, 나머지 20%를 인도네시아가 개발비로 부담하기로 했다. 

이어 지난 2016년 1월 KAI와 계약을 맺고, KF-21 개발비의 20%인 약 1조7000억원을 2026년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대신 비행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생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지난 2019년 1월까지 2722억원가량만 납부했다. 그러다 4년가량 경제난을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했다.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1월에 94억원, 올해 2월에 417억원만 추가로 각각 납부했을뿐이다. 

계획대로라면 1조1000억원을 납부해야 하는데도 지금까지 8000억원을 연체한 상태다. 

정작 한국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진상짓'이다. 일각에서는 "동남아권의 전형적인 XX치 행동"이라는 '극언'을 들을 정도다.

프랑스 해군의 라팔 전투기[연합뉴스 자료 사진]
프랑스 해군의 라팔 전투기[연합뉴스 자료 사진]

인도네시아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를 보면 이런 비난이 절대로 과하지 않다. 공군전력 '공백 메꾸기'를 핑계삼아 운용한지 30년이 넘는 프랑스제 라팔 전투기 12대를 카타르로부터 도입하는 데 9400억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 줄 돈으로 다른 나라 중고전투기 구입에 사용했다는 얘기다. 현지에서는 프라보워 장관이 '대선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 로비스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런 와중에도 인도네시아는 미국, 프랑스 등에 스텔스기 등 최첨단 전투기 도입 '추파'를 던지고 있다. '한국 학습효과'가 있는 이들 국가는 물론 냉담한 반응이다. 국제무기시장에서 온갖 '더티플레이'(dirty play)로 평판이 좋지 않은 프랑스마저 "현찰을 주지 않으면 거래는 없다"는 식으로 나올 정도다.

이제 문제는 한국이 언제까지 인도네시아와의 이런 불편한 관계를 계속해야 하느냐다.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납부 지연으로 한국의 KF-21 양산 계획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조원 규모의 내년도 관련 예산을 책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업타당성조사를 끝내야 하지만 지연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KF-21 양산비용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편성하려면 기획재정부가 회계연도 90일 이전인 다음달(8월) 초까지는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자카르타發 리스크'로 예산안 편성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방사청 관계자들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미납금 독촉을 촉구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형근 방사청 공보담당관도 이를 의식한듯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미납이 사업에 영향이 없도록 정부, 업체 간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인도네시아와 고위급 면담을 추진하는 등 인도네시아 측 의사를 확인한 후에 대응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원론적인 설명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제에 아예 인도네시아를 KF-21사업에서 배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픽]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 일지[연합뉴스]
[그래픽]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개발 일지[연합뉴스]

지난달 말 KF-21의 마지막 시제기인 6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해 양산체제에 들어간 데다 '폴란드 대타'가 있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K-9 자주포, K2 흑표전차, FA-50 경공격기 등 가성비 좋은 한국제 무기를 도입해 '최고의 큰손'으로 등장한 폴란드가 훌륭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으로 글로벌 메이저 선수로 발돋움한 'K-방산' 태동기에 인도네시아가 한국산 무기의 주고객인 점과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니켈에 관한한 세계 최대생산국인 점을 고려할 때 손절매를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진상짓에는 화가 치밀지만, 동남아권의 맹주에다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라는 사실도 고려해 달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