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해 기세 좋게 포기를 선언하더니 그걸 ‘서약’할 용기는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호기롭게 말했다.

특권 포기한다면서 서약서는 외면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한다면 10번이 아니라 100번이라도 응하겠습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습니다.”

지난 2월 27일 그에 대한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표결 때는 찬성표가 출석의원 과반(149표)에 10표 모자라게 나와 준 덕분에 가까스로 체포를 면했다. 소속 의원들을 면담하고 문자도 보내고 하면서 안간힘을 썼으나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1388표)보다 오히려 한 표 많았다. 그로서는 엄청난 수모를 겪은 셈이었다. 다음에 다시 체포동의안이 제출되면 과반의 찬성표가 나올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었다. 그 창피를 면하는 길은 허장성세(虛張聲勢)뿐일 터였다. 검찰이 제1야당 대표에 대해 두 번이나 체포동의안을 제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한몫해서 ‘특권 포기’를 공언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야말로 생뚱맞은 용기자랑이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 대표 자신에 국한된 권리포기라며 뒷걸음질 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이 23일 집단적으로 특권포기 서약서에 서명하고 나섬으로써 퇴로가 막혀버렸다. 민주당은 26일 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고, 회기 중에도 당론으로 체포동의안을 부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최고위원회의 방침이었을 뿐 의원총회 결의는 아니었다. 

그것조차도 상황에 떠밀린 결정이었다. 국민의힘이 집단적으로 서약서에 서명한 그날 민주당 혁신위도 민주당 의원 전원의 서약서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지도부는 자기들이 구성한 혁신위의 요구에 즉각 답하지 못하고 사흘이나 뭉기적대다가 일종의 타협안을 내놓은 것이다. 방탄은 않겠지만 서명도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는 “제가 불체포특권 행사를 하지 않고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으니 그렇게 아시면 되겠다”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원 장관의 토론 제의 안 받는 까닭

그렇게 얼버무려지나 했던 서약서 문제가 12일 다시 불거졌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혁신안을) 안 받으면 민주당은 망한다”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당내 일각에서 제기된 ‘혁신위 무용론’에 자극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출범당시부터 ‘장식용 기구’라는 부정적 전망과 평가가 많았는데 이를 당 소속 의원들이 확인시켜주는 듯한 분위기가 아주 불쾌했을 수 있다. 그래서 “잔소리 말고 혁신위의 1호 혁신안이나 수용하라, 이것도 못하면서 무슨 엉뚱한 말이나 퍼뜨리고 있느냐”는 심정이 되었을 법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게 있다. 이 대표의 정치스타일이다. 소위 ‘사이다 발언’이라는 걸 잘하지만 그 속에 포함된 자신의 책임 몫은 잊어버린 양 하는 재주를 그는 자주 실연해 보인다. 

“불체포특권 제한해야 된다. 100% 동의할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5월 22일 청주 지방선거 유세 때 한 그가 한 말이다. 정작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되자 그는 빠져 나가려 다양한 기술을 시전했다. 구차한 방법으로 체포를 면하자 다시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을 통해 특권 포기 선언을 했다. 그랬다가 서약서 문제가 제기되니까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것이 이재명 식 공약이고 위기대처법이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논란과 관련해서도 그는 같은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다. 원안대로 처리하라고 정부를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대안의 종점 인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으니 이는 특혜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다. 원안의 종점 부근에 민주당 전 양평군수의 땅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 서울~세종시 고속도로에 연기IC가 추가됨으로써 인근에 있는 이해찬 전 당 대표의 땅과 집 가격이 급등했다는 언론보도들에 대해서도 모르쇠다. 오직 ‘김건희 특혜’만을 외치면서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페이스북과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토론’을 제의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국정조사를 악용해 거짓과 선동을 질질 끌고 갈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진실의 링에 올라 저와 토론에 즉각 임해주기를 바란다.”

양평 주민들이 입장 분명히 해야

국민이 보는 앞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보자는 것인데 김건희 특혜설을 주장하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이를 거절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주무장관을 직접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릴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 대표는 국정조사만을 고집한다. 그 계산을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가능한 한 오래 논란을 끌어가겠다는 것이다. 

의혹이 제기된 이상 아무말대잔치가 되게 마련이다. 시끄럽게 떠들수록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흐려진다. 그걸 노리는 것이다. 어차피 국정조사는 정치적 행위일 뿐 거기서 유무죄가 가려질 것은 아니다. 대신 유권자의 표신에는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러자고 의혹을 제기했고 그러자고 국정조사를 고집하는 것이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답을 찾기는 어렵잖다. 국책사업에 원안만 있을 수는 없다. 대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도 문재인 정부에서 맡긴 용역의 결과였다. 그 때 이미 ‘김건희 특혜’가 기도됐다는 것인가? 계획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국회 논의가 배제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동네방네 다니며 ‘김건희 특혜’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인터체인지도 아니고 분기점이다. 그것으로는 특혜 시비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강하IC를 원안의 노선에 가깝게 하느냐 대안의 노선에 가깝게 하느냐 이겠는데 어느 쪽에 설치하든 특혜와는 상관없다는 것을 민주당이라고 모르겠는가. 총선용의 선동꺼리가 필요할 뿐이다.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무산되든 말든 민주당이 손해 볼 건 없다는 게 이들의 계산일 것이다.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걸 이 대표도 알아챘음직하다. 그렇지만 선동꺼리로는 제격이다. 훗날에도 명확히 옳고 그름이 밝혀지기 어렵다. 설령 민주당의 억지가 뚜렷이 드러난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총선이 끝난 다음이다. 이 역시 이 대표가 정치하는 방식이다. 문제에 대처하는 행동패턴이 똑 같다. 선동을 해서 효과를 챙기고 난 다음엔 잊어버린 양 한다. 그걸 따지는 사람이 있으면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우긴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다른 선동을 시작한다. 

고속도로 노선, IC와 JC(분기점)의 위치에 대해서는 원안과 대안이 제시돼 있다. 이젠 현지 주민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어 선택만 하면 된다. 정당이 끼어들어 이쪽으로 하라, 저쪽으로 하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주민들이 정말로 고속도로 신설을 원한다면 정치세력들의 개입을 앞나서서 막아야 한다. 그러기 싫다면 고속도로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치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