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젊었을 때는 인생이 짧다는 생각을 못하고 산다. 삶에 열중하고, 죽음 또한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개는 은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다.

“지는 해에 내 인생이 실려 버렸어!”

남은 인생이 줄어들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불안과 초조와 아쉬움이 찾아든다. 웬만큼 살았고 웬만큼 즐겼는데도 아쉽고 억울하다. 만약에 인생이 짧다는 것을 미리 깨달았더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킴벌리 커버그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란 시처럼 아마 훨씬 더 멋진 인생을 살았겠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중 략)------------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중 략)------------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지만 후회와 회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앞으로 잘살면 되는 것 아닌가? 지는 해에 인생을 걸쳤기 때문에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직 살날이 10~20년, 아니 30~40년이 남았을 수도 있다. 곧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인생이 아니라면 지금도 시간은 충분하다.

인생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지만 그것을 깨달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인생이 짧게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생이 짧으면 치열하게 살 이유가 생긴다. 이제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가슴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

남은 인생이 짧다는 것 말고는 노년이 청장년기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인생은 어느 시기이건 그에 알맞은 일이 있고, 그때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노화는 몸의 변화에 맞추어 순응해 가면 그만이다. 천천히 익어가는 술처럼 인생의 향기를 발산할 수 있다면 노년도 젊음에 못지않다.

나이가 들면서 여생은 짧아지지만, 오히려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진다. 사실 나이 들면서 넉넉해지는 것이 시간 아닌가. 여유로운 시간을 잘 활용하면 젊었을 때보다 의미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나이 들었다고 억울해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놀 수도 있다. 사실 나이 들어보니 사는 게 편하고 젊었을 때보다 재미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이 드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해서 좋아질 것도 없다. 오히려 무기력과 우울감만 늘어날 뿐이다. 나이 듦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하는 일 없이 늙어가는 것이고, 정말로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사는 것이다.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고 자책도 하지말자. 그것보다는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게 낫다. 나는 기적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하면 확실히 안 되기 전까지는 도전한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결과로 나타났을 때에는 순리에 따르지만 기적 같이 일이 성사될 때도 있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의 황혼은 짙어지는 법이다. 이왕이면 인생을 축제처럼 살아보자. 어떤 사람은 젊었음에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었음에도 젊다. 나이가 인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언제나 인생의 황금기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언제 또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자! 이제 인생의 가을이 되었네그려.
가을 차 한 잔을 진하게 타서 마셔보세.
쓸쓸한 낙엽향도 좋고,
약간 탄내 나는 노을향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