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오래된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오래되어 낡아진 것이 있는가하면, 오래되어 새롭게 가치가 더해진 것이 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노쇠해지기도 하고, 잘 익어가는 포도주처럼 새 맛을 내기도 한다. 나이와 함께 속절없이 늙어만 갈 게 아니라 더 가치 있고 더 새로워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우리는 인생의 시기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단순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 인생이 잘 성숙되지는 않는다. 가치 있게 새로워지려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절대 숙성된 새 맛을 낼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갈 것인지, 익어갈 것인지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달렸다.

요새 보면 60세도 전에 스스로를 노인으로 생각하고 삶에서 한 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정년이나 명예퇴직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60대는 물론 70대까지도 건강 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80세가 넘더라도 신체적, 지적 능력이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나이 듦을 쓸모없음이나 나약함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법정스님의 책 《오두막 편지》 중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는 글에 좀 멋진 표현이 있다.

“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흥미와 책임감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는 한 그는 아직 현역이다. 인생에 정년이 있다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멈추는 바로 그때다. 그것은 죽음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이 바로 제대로 익어가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자신이 이미 늙었다고 생각하며 무슨 일에서든 몸을 사리게 되면 정말 늙고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늙기를 자청하지 않아도 우리 몸은 언젠가는 늙고 쇠락해질 텐데, 왜 굳이 빨리 노인이 되기를 갈망하는가.

‘노년은 약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은 진짜 늙기도 전에 노인이 되게 만든다. ‘나는 노인이니까’ 라는 생각은 스스로 돌절구에 앞니를 찧는 행위와 같다.

열 살 때는 스무 살의 마음을 모르고, 삼십 대에는 오십대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 커가는 것이다. 인생이 짧은 것 같지만 무척 길기도 하다. 인생 후반기,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른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사유의 폭을 넓혀나가야 할 것 같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박희준의 <하늘 냄새>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하늘처럼 맑아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이야말로 잘 나이든 사람이 아닐까. 나이 들면 무엇보다 슬픈 게 사진 속의 자신의 모습을 마주 할 때다. 흠칫 놀라며 왜 이렇게 찍었냐고 하소연 해보지만 몇 장을 더 찍어도 보정 없인 만족할 만한 사진을 구하기 어렵다. 늙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익어가는 모습이 연출되려면 몸과 마음을 닦아 품성, 지식, 도덕심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시간의 흐름에 어울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싱싱한 피부와 푸릇푸릇한 느낌, 젊음이 우위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노년이라고 해서 위축될 이유도 없다.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호호백발 행세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나온 세월만큼 나이 들면서 잘 익어 가려고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노쇠와 고독과 소외쯤은 감내하면 그만이다.

oldies-but-goodies, new-old-fashioned
(오래되어도 가치 있는, 오래되어도 새로운)

시간의 흐름으로 화려한 빛은 잃어가도 더 성숙해진 분위기로 되살아나는 빈티지의 매력. 이것이 바로 잘 익어가는 노년의 모습이 아닐까. 그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이런 저런 분별력이 생겨 사려 깊고 신중해진다면, 젊었을 때는 듣지 못하던 귀와 보지 못하던 눈에 이제는 들리고 보이는 것들이 많아진다면 행복한 일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