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시간의 강과 영원한 없음의 만남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펄럭이는 불꽃이 태어났다.
생명의 불꽃이.

아프리카 줄루족의 전승 <영원한 없음>의 한 구절이다. 별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지구도 없고, 없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영원한 없음’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의 불꽃’이 태어나 태초에 우주가 생겨났다. 변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 변화, 빅뱅(Big Bang)! 결국 이 세상에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을까?

어떤 개체에서 절반의 방사능이 방출될 때까지의 시간을 ‘반감기’라고 한다. 개인의 지식이나 역량도 내부요인이나 환경변화에 따라 반감될 수밖에 없으며, 그 시간은 빨라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로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 길은 변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거대한 시대적 조류, 메가트렌드(Megatrends)! 새로운 기술로 인한 파괴적 현상의 일상화 등 변화의 한가운데서 가만히 앉아있기라도 한다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다윈(Charles Darwin)은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라고 했다.

전함은 악천후를 만나 바다 한가운데 고립되었다.
“함장님, 긴급사태입니다. 우현 쪽에 불빛이 수신되고 있습니다.”
“전진하고 있나 후진하고 있나?”
“아주 위험한 충돌이 예상되는 위치로 전진 중입니다.”
함장은 조타수에게 건너편 배에 신호를 보내서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라고 명령했다.  건너편에서 답신이 왔다.
“그 쪽에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시오.”
무례한 반응에 기분이 상한 함장은 거칠게 “나는 함장이다. 기수를 돌려라”고 했다.
 
그러자 “저는 이등수병입니다. 하지만 함장님이 기수를 돌려 우회해야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저는 등대지기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막을 방법은 없고 오직 적응해야 할 뿐이다. 탈무드에 “돌멩이가 항아리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고, 항아리가 돌멩이에 떨어져도 항아리의 불행이다. 어찌됐던 항아리의 불행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변화가 목을 죄면서 쫓아오는데 그럴 수 없다고 부정하고 심지어 분노하거나 현실 자체를 거부하는 행동을 취해보았자 소용없다. 과거의 성공이나 음미하면서 뒤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존을 추구할 것인가?

사회가 급속하게 변할수록 나이 든 사람은 약해진다. 40~50대만 되어도 잠깐 넋 놓고 있으면 지식이 낡아서 뒤쳐진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의 출현과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의 위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십상이다. 사회적 지위나 역할의 감소는 물론 조기은퇴의 압력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생존방법은 하나다. 예전에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언런(Unlearn)’이라는 단어가 있다. ‘런(learn)’의 반대말이다. 배운 것을 지워버린다는 의미다. 이 표현은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1990년대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21세기의 문맹자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새것이 나타나면서 환경이 바뀌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니 지난 시절에 배웠던 것은 버리고 새로 배워야 한다.

“어느 정도 나이 들면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 행복해. 그래, 너희가 나를 바보라고 하면 나 바보 될 거야!”

나도 가끔 이렇게 편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데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인가? 이제 겨우 70세 언저리에서 벌써 물러나 바보 같은 늙은이로 산다고? 이런 생각을 하면 또 아찔해진다. 그냥 편하게 살아야지 생각하다가도 삶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몰라도 60~70대의 몸은 아직 쓸 만하고 살아갈 날도 많다.

아름다운 젊음은 자연의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노력이 깃들인 인생의 작품이다. ‘배우고 버리고 새로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