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더불어민주당이 18일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결의를 채택했다. 이재명 당 대표가 지난달 19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불체포 권리(불체포특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지 한 달 만이다. 그 사이 당내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내분 양상까지 빚어졌으나 이 대표는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었다. 

이 대표는 계기 마다 호기롭게 불체포특권 제한 혹은 포기를 입에 담았었다. 예컨대 작년 5월 22일 지방선거 청주 유세 때 그는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는 것에 100% 동의한다. 처음부터 제가 주장하던 것”이라고 했다.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말이었으니 그건 당의 공약일 터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의 말을 무시하는 듯한 반응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혁신안 안 받으면 민주당 망한다”

21대 국회 들어 여야 정당들은 의원 3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특권 내려놓기의 실천이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28일 노웅래 의원(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동의안 처리 때부터 민주당은 역주행을 시작했다.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동의안을 부결시켜버렸다. 노 의원의 읍소작전 덕이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제출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부결의 선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고 2월 27일 국회 본회의는 이를 부결시켰다. 민주당 안에서 30여명의 이탈이 있었던 탓에 체포 찬성(139표)이 반대보다 오히려 1표 더 많아지는 이변이 연출됐다. 다만 찬성표가 과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이 대표는 창피하게 구출된 것이다. 

‘돈 봉투 의혹’에 연루된 같은 당의 윤관석·이성만 의원도 지난달 12일의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해 체포를 면했다. 이 대표만 구하고 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지난 3월 30일 표결에 부쳐졌던 국민의힘 하영재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거뜬히 통과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동지애는 내편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참으로 모진 심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주당 안에도 레밍의 생태를 닮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력 및 판단력을 당 대표에게 저당 잡히기를 거부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게 있다. 이들의 반발과 저항이 지속적으로 빚어졌고 결국 당 혁신위원회가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과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을 제1호 혁신안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더 직접적인 동인(動因)은 국민의힘이 제공했다. 

여당 의원들은 지난달 20일 김기현 당 대표가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국회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 서명을 제안한데 따라 이튿날부터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23일 소속 의원 51명이 특권 포기를 선언했고, 서명은 이어져 김웅·권은희 의원을 제외한 110명이 참여했다. 민주당의 퇴로를 막은 것이다. 

민주당이 구속영장 적부 심사?

결국 당 혁신위가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혁신안을 안 받으면 민주당은 망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주춤거렸다. 같은 날 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를 했으나 결론은 없었다. 그러자 다음날 민주당 비명계 의원 31명이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집단 반발이 구체화되고 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의원총회를 열어 방탄수(防彈手) 역할 포기를 결의했다. 그렇지만 정말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단서가 붙은 선언이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언제든 특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기관의 임무 수행은 합법성·정당성을 전제로 이뤄지고 (법은 물론 국민에 의해서도) 승인된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검찰의 존립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정당성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한다. 이처럼 국가기관과 제도를 우롱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이다.     

원래 의원 불체포 특권은 정권 측의 부당·불법한 위협과 탄압으로부터 입법부와 입법권의 독립적인 지위를 지켜내기 위한 장치로서 마련됐다. 과거 군사독재 혹은 권위주의적 통치 시대에는 그러한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야가 번갈아 집권한 경험이 축적된 시대다. 여든 야든 이제 와서 검찰권 행사의 정당성을 따지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벌써 특권 포기 선언 무효화의 조짐이 보인다. 민주당 이 대표가 19일 “검찰이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하필이면 그 자신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지 꼭 한 달이 되는 날 다시 전투태세로 전환했다. 쌍방울 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전날 재판 과정에서 검찰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지자 나온 그의 반발이다.    

이화영 배우자의 탄원서로 맞불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이 이재명 경기지사(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하기로 한 것을 당시 이 지사에게 사전에 보고했고 이후 대북 송금이 진행됐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자꾸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공격했다. 민주당은 이 전 부지사 배우자의 탄원서를 전날 접수했다며 “신체적 고문보다 극심한 심리적 압박은 군사독재 시대의 전기고문만큼 무섭다”는 등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검찰이 정말 의도를 가지고 이 전 지사에 대해 심리적 고문을 계속해 왔다면 이를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민주당이 문제를 제기한 만큼 진상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동시에 분명해 진 것이 또 있다. ⓵(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 대표에 대한 또 다른 구속영장 청구 및 체포동의안 제출이 불가피해졌고, ⓶민주당은 탄원서를 내세워 ‘정당하지 못한 영장 청구’라며 다시 방탄에 나설 게 분명해졌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다고 해도 법관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후에야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국회가 방탄 국회, 방탄 표결을 해가며 특정 의원의 체포 및 구금을 막아야 할 현실적 이익이나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도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체포를 막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을 저지른 바 없다면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을 면하는 게(국민의힘 하영재 의원의 경우처럼) 더 낫지 않은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마지못해 특권포기 선언을 했는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악재가 덮쳤으니 딱하게 되긴 했다. 그 점은 이해가 되지만 행여 또 이 대표 방탄수 노릇을 할 생각은 않는 게 좋다. 핑계 여하 간에 다시 불체포특권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둘렀다가는 국민 신뢰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들이면 몰라도 명색이 거대 정당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피노키오증후군을 어느 국민이 다독이고 쓰다듬어주겠는가. 제페토 할아버지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