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현대건설이 지난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조 5000억원( 한화 약 50억 달러)에 달하는 아미랄(Amiral) 석유화학단지 사업을 수주했다. 이 사업은 사우디 동부 주베일 지역에 추진하는 사우디 최대규모의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이다.

이보다 47년 앞선 1976년 현대건설은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로 불리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같은 지역이다. 당시 수주액 9억 3천만 달러는 계약 당년의 환율로 4천 6백억 원 정도, 그해 우리나라 예산의 근 절반에 상당했다. 선수금 2억 달러가 들어오자, 외환은행장은 정주영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이 우리나라 건국 후 가장 많은 외환보유고를 기록한 날”이라며 기뻐했다.

주베일 산업항의 수주는 기적과도 같았다. 10개의 시공회사 후보로는 미국과 유럽의 9개 사가 우선 선정됐다. 현대는 마지막 한자리를 파고들었다. 실력은 울산 조선소를 세계 최단기에 건설했다는 경험으로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 그러나 지급보증금 2천만 달러(지금 기준 300억 원 정도)가 문제였다. 지난해 현대건설의 연 매출 20조 원을 보면 하루 매출액도 되지 않지만, 당시 현대의 신용도로는 벅찬 규모였다. 바레인, 사우디, 미국을 연결하는 다자 보증으로 이를 힘겹게 해결하자 이제는 경쟁사로부터 회유가 들어왔다. 특히 프랑스의 스페타놀에서는 컨서시엄 멤버로 들어와 달라고 했다. 한불경협위원장이며 정주영과 친분이 있던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조 회장의 설득에 정 회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입찰 보증금 4천만 달러를 못 만들어, 그냥 돌아가게 생겼다”고 했다. 조 회장은 현대가 입찰 보증금을 못 만들어 공사를 포기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2%의 입찰 보증금을 감안하면 현대의 당초 응찰액은 20억 달러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상대방의 회유를 기회로 반전시킨 정 회장 특유의 능청스러운 전략이었다.

주베일 산업항은 수심 10m의 바다를 길이 8km, 폭 2km로 매립해 항구와 기반 시설을 만드는 공사로 해저 30m 암반에 기초공사를 하고 초대형 적하시설을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다 50만 톤급 유조선 4척을 한 번에 정박시킬 수 있는 해상 터미널 공사도 포함됐다. 육상과 해상에서 토목은 물론 건축, 설비, 전기 부문과 함께 수송, 하역, 설치까지 그야말로 20세기 최대,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건설의 백과사전이었다.

입찰에 들어가면서 정주영 회장은 전갑원 상무에게 입찰가로 8억 7천만 달러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전 상무는 그건 너무 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장의 지시를 어기고 9억 3,114만 달러를 썼다. 실패하면 걸프만에 빠져 죽겠다며 6천만 달러를 더 쓴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건설은 최저가에 더해 8개월의 공기 단축까지 제안해 공사를 따냈다. 정주영은 전 상무가 걸프만의 물귀신이 안 되어 좋았고 우리나라는 6천만 달러를 더 벌게 됐다며 그날 밤 특별격려금을 지급했다.

정주영은 어려운 공사를 하면서 스스로도 힘든 결정을 했다. 모든 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해 해상으로 운송한 것. 울산에서 주베일까지는 1만 2천km, 단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택했다. 차선으로 보험에 들자고도 했으나 거절했다. 바지선이 빠지면 보험사가 건져줄 거냐고 일축했다. 예인선 3척과 바지선 6척이 12만 톤 강재 자켓, 강관 파일, 콘크리트 슬라브를 끌고 19차례나 인도양과 태평양을 오갔다. 보험 가입 대신 그는 자켓이 해난사고를 만나도 바다에 떠 있도록 하는 공법을 개발했다. 실제 8항차에서 태풍을 만나 바지선 한 척을 잃어버렸지만, 나중에 대만 해안에 떠밀려 있는 것을 찾아 고스란히 끌고 온 사례가 있었다. 큰 사고 없이 해양 수송을 마친 것도 이슈였지만 수심 30m 해저에서 중량 500톤짜리 자켓을 오차 5cm 이내로 설치하면서 발주처와 감독청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직원들에게도 힘든 일을 요구했다. 거기에 현장 부근의 동아건설과 비교한 저임금까지 알려지자, 근로자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사소한 말다툼이 폭력으로 치닫고 급기야 3천여 명 근로자들이 모두 폭동에 가까운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사우디 당국에서는 군을 출동시키기까지 했다. 이른바 3.13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본사의 기민한 대응으로 급여 백 퍼센트인상 등에 합의하고 33시간 만에 사태는 일단락을 지었다. 무엇보다 이 일을 계기로 근로자와 회사 간 쌓였던 장벽이 무너졌고 난무하던 욕설은 정겨운 인사로 바뀌었다. 정주영이 근로자들에게 요구했던 힘든 일은 나라와 미래를 위한 보람이 됐다.

이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에 현대가 세계 500대 기업 중 90위로 올라갔고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 건설의 해외 계약고가 세계 4위라고 보도 했으니, 주베일 항만 공사가 현대는 물론 한국경제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만하다.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같은 지역에서 손자(정의선) 현대건설이 할아버지(정주영) 현대건설의 5배가 넘는 50억 달러 규모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사우디와 외교적으로 가까운 중국이 가격경쟁력을 내세웠지만 사전심사에서 모두 탈락할 정도로 현대의 기술경쟁력은 건재했다. 사우디에서 50년간 170여 건, 232억 달러의 공사를 수주하면서 쌓여진 신뢰도 큰 몫을 했다. 현대건설은 창업자가 일군 땅에서 다시 한번 신화를 창조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어려운 한국경제에 돌파구를 열어 주었듯이 정의선의 현대건설도 우리 경제의 활력 회복에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