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22살 된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일 때 그렇게 묻더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2030 청년 좌담회‘에서 아들의 질문을 소개한 뒤 설명을 덧붙였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 나이부터 남은 평균 기대 수명까지, 엄마 나이부터 남은 기대 수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되게 합리적이지 않아요?”

나이든 사람 배제론이 합리적?

그러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중학생이 그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주 희망적이다. 그런 의문을 가질 만도 하다. 아마도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미래에 대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류 차원까지는 갈 것도 없이 우리 국민이 당면한 문제들은 너무 많다. 그것들이 해결 가능성을 보여주기는커녕 중첩적으로 악화되기만 한다는 위기감이 확산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국민연금이나 국가부채 등과 관련해서 ‘미래세대 착취’나 다름없는 정책을 정부가 바꿀 생각조차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의 비겁함 무책임성을 부각시키고자 할 때 주로 예시됐던 문제들이다. 그들은 ‘자손들에게 빚을 떠넘기는’ 착취적 재정정책을 태연히 추진했다. 특히 국가부채의 경우 작년에 이미 1000조원을 훌쩍 넘겼는데 문 정권이 집권 5년 간 그 가운데 400조 이상을 늘려 놨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후보이던 재작년 12월 오히려 문 정부의 재정 운용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채무비율이 100%가 넘어도 문제가 없다. 개인부채는 못 갚으면 파산이지만 국가부채는 이월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주장이었다. 돈을 풀어 경기와 민생을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표심을 유혹한 것이다. 그 부채가 훗날 자신들의 짐이 될 것이 뻔한데 청년세대(나아가 소년세대까지도)가 어떻게 국가운영주체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돈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쓰고 그 빚은 차세대가 두고두고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적개심까지 생겨날 법하다.

그런데 그걸 투표권과 연결시킨 것은 재미있는 착상이긴 하지만 엉뚱한 화풀이다. 투표는 후보 중에 공무담당자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아마 아들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생각이었을 텐데(잘못 이해했거나) 억지가 심하다. 젊은 유권자가 선택하는 후보라면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인정해줘도 된다는 것인가. 정책의 결정은 투표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 선출된 공직자들(대통령, 국회의원 등)이 한다. 그렇다면 공직 선거 후보의 연령제한을 주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보수 유권자’만 격리시킬 수 있으면 민주당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라는 계산은 아니고?

투표자가 미래 결정한다는 허구

더 큰 착각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여기는데 있다. 그들은 현재의 국가를 경영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정책이나 법률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냐 하는 것은 예측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국가운영주체들은 미래에 대한 예상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를테면 ‘현재와 미래의 타협’ 같은 것이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지금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김 위원장 식의 논리라면 자녀를 낳는다는 자체가 그 미래까지 결정하는 행위가 된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 잘 성장하도록 키우는데 온 정성을 다한다. 그건 자식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결정은 그 자녀들이 성장해서 나름의 생존력 판단력을 갖췄을 때 그들이 직접 하게 된다. 부모든 연장자든 ‘미래 결정’의 권한을 위임 받은 바도, 받을 수도 없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다 김 위원장을 역성드는 글을 올렸다.

“지금 어떤 정치인에게 투표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진리를 말했다. 누구나 죽는다. 그건 불변의 진리다. 하필 투표자들 만이랴. 뽑히는 후보도 미래에는 없는 사람들이 된다. 지금 태어난 사람도, 앞으로 태어날 사람도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사람들은 투표권을 갖지 말아야 하나? 게다가 결정권은 공직자로 선출되는 후보가 갖는데?

개인·사회·국가 모두 미래가 결정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작동하고 운영되는 게 아니다. 그 시점에 당면하게 되는 문제, 제기되는 과제들에 대해 최선이라고 여겨지는 방법과 제도를 찾아 적용해 가는 과정이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저쪽에 미래가 있다. “왜 미래를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결정하느냐?”는 항변은 논리적으로는 물론 문법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 아무도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최선을 다함으로써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치욕스러웠다면 그만 뒀어야지

양이 의원으로서는 유감스럽겠지만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생각이 옳다고 여긴다면 먼저 자신부터 의원직을 내려놓는 게 옳다. 미래에는 없을 사람이 법을 만들어 미래세대를 규율하는 것은, 자신의 논리대로라면 모슨 아닌가? 청년세대의 표를 얻고 싶다면 보다 밝고 실천 가능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연령별 차등 선거제도를 도입하고 싶다는 뜻인 것 같은데 노인들을 아예 배제해 버리면 미래세대가 만족할 만한 정책의 수립이 보장되는 걸까?

그나마 양이 의원은 사과라도 했다. 대한노인회가 ‘미래에 살아 있지도 않을 사람들’을 대표해 사과를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폭언 당사자인 김 위원장은 말 재주나 피우며 사과를 회피했다. 2일 춘천에서 가진 ‘강원도민과의 대화’ 시간에 “정치언어를 잘 몰라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고 한 게 고작이다. ‘정치언어’를 몰랐던 게 아니라 정치의 본질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해서 죄송하다’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김 위원장은 전날, 그러니까 1일엔 ‘인천시민과의 대화’에서, ‘혁신’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인성과 자질을 스스로 드러냈다.

”분노가 치밀어서 이 일(혁신위원장)을 시작했다, 윤석열 밑에서 통치 받는 게 너무 창피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 때 금감원 부원장으로 임명 받았는데 윤석열 밑에서 부원장으로 임기를 마치는 과정이 엄청 치욕스러웠다.“

연봉이 3억 원이나 되는 자리라고 한다. 원장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끝까지 버텨 임기를 다 채웠다. 다른 부원장들은 원장이 바뀔 때마다 모두 물러났지만 그는 꿋꿋이 버티었다. 그런데 갑자기 ‘윤석열’(그냥 이름만 불렀다) 밑에서 임기를 채운 게 ‘치욕스러웠다’고 했다. 제1야당, 원내 제1당의 혁신을 이끈다는 사람의 무례와 견강부회가 이 지경이다.

아마도 당을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서니까 다른 욕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총선에서 공천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고 여기는 게 분명하다. 내 세울 투쟁 경력이 없으니 말이라도 거칠 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건가? 고액 연봉을 받으며 잘 지내놓고 퇴임 4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 갑자기 ‘분노’ ‘치욕’ 운운하며 치를 떨듯 하다니! ‘나이든 사람 퇴장론’으로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긴 것과 맥락이 같다. 정치언어는 모르지만 민주당내 세력판도는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혁신의 기치를 들고 당을 구태의 수렁으로 끌고 가는 동인과 동력이 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