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포스터(이른바 웹자보)를 만들어 16일 오전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렸다. 그 한 가운데 “당당하게 맞서겠습니다”라는 표어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단에는 자신이 중앙지검에 출석할 날자와 시간이 소개돼 있다. 자기 뒷모습과 그를 향해 카메라플레시를 터뜨리는 기자들의 모습이 배경사진으로 쓰였다. 그의 선동 열정이 식을 때가 있을까?

개딸 총동원령으로 무엇을 노리나

우리 국민 가운데 피의자로서 검찰과 맞장 뜨자고 덤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검찰이 피의자로 오라면 일단은 범법 의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억울한 의심을 받고 있다면 가서 무고함을 입증하면 된다. 검찰 수사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유무죄는 법원이 가려준다. 따라서 법정에서가 아니라면 검찰과 맞장 뜰 까닭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과도하게, 집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스스로 죄가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법원에 가면 유죄 선고가 날 테니까 다리를 끊어 버리자는 계산이 아니라면 이런 행동을 왜 하겠는가. 법원까지도 믿지 못해서 원내 제1당의 대표가 검찰과 직접 대결하겠다는 것이라면 이 나라의 법치는 끝났다. 입법부를 주도하는 정치세력의 우두머리이자 법률가이기도 한 그가 “해결책은 오직 결투뿐”이라고 외쳐야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법치가 가능하겠는가.

어쩌면 당내 분위기 정리를 위한 행동일 수도 있겠다. 어느 신문의 기사 제목처럼 ‘개딸 총동원령’을 내려 이들, 극렬 지지자들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당내 반명(反明: 반 이재명) 혹은 비명(非明: 비 이재명)세력의 기세를 꺾겠다는 심산일 개연성도 없지 않다는 뜻이다. 정당 대표 연설을 통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으니 의원들에게 직접 호소하긴 어렵다. 물론 ‘정당한 영장 청구’가 아니라며 부결을 독려할 수는 있겠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그보다는 위압적 분위기 조성을 통한 의원들의 자발적 충성을 유도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길 것 같기도 하다. 

설령 구속이 되더라도 대표직을 유지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총동원령을 내렸을 지도 모른다. 개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었는데 아무리 비명계라도 당직을 내놓으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옥중 결재’의 상황이 된다면 당내엔 비장감이 고조될 것이다. 그걸 동력 삼아 ‘이재명의 투쟁’은 계속된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날까지!

‘1원 한 푼’ 따위 결백 과장 그만해야

재판 투쟁에서는 이미 노하우가 충분히 축적됐다. 게다가 기소돼 법정에 선다고 해도 대법원 판결까지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 ‘유력 차기 대선 후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되면 또 조력자가 나타나 구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말한바 ‘잔기술’ 정도로는 어림없지만 이 대표는 이미 ‘큰기술’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고 있을 법하다. 

그는 같은 날 각 시‧도당 위원장과 소속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검찰의 소환이 벌써 네 번째라며 “정권의 무능을 감추고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구속영장 청구 쇼에 ‘묻지마 기소’를 강행할 것”이라고 적었다. 그 전날에는 당원들에게 비슷한 내용의 서한을 보낸데 이어 민주당 의원들의 단체 대화방에도 글을 올렸다. “1원 한푼 사익을 취한 것이 없고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니 당당히 맞서겠다”며 검찰 진술서 요약본을 공유했다고 한다. 

(‘1원 한 푼’ 같은 결백 과장은 더 이상 안 하는 게 좋겠다. 경기도 법인카드로 산 초밥 등 음식물을 자신이 안 먹었다고 해도 사익을 취한 것은 부인할 수가 없게 되지 않았는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배포 있게 선언하더니 서한은 또 뭔지.)

어쨌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고, 그가 정치리더로서 꼭 맡아줘야 할 일이 있다. 리더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추종자들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동시에 추종자들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대권 꿈’ 말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언제나 모호하다. 오직 자신의 개인적 꿈을 위해 민주당이라는 거대정당을 이용한다는 인상만 줘 왔을 뿐이다. 

‘모범’이라는 점에서도 이 대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간 논란이 되어 온 것이 대부분 그의 사익을 위한 범법 혐의였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일찍이 정치 리더 가운데 이 대표만큼 많은 도덕적‧윤리적 하자를 노출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압도적 다수 정당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기술엔 경탄(驚歎: 몹시 감탄함. 놀라고 탄식함)을 금할 수 없다. 

검찰에 대한 압박도 특권의식이다

그 기술을 발휘해 줄 일이 있다. 검찰의 공무집행에 공공연히 대항(헌법상의 국민 저항권과는 성격이 다른)하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확신한다면 다른 형사 피의자 모두의 대항권도 존중해줘야 한다. 자신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은 민주정당의 대표이자 입법부의 일원으로서는 용인될 수 없는 비열한 이기심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이 대표는 모든 피의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을 공격하고, 군중들을 끌어 모아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특권은 입법자로서의 공적인 신조와 행위에 대한 것이지 불법적 사익추구까지 보호해주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다든가, (법에 정해지지도 않은) 특권적 지위로 검찰을 압박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피의자도 똑 같은 권리를 누리게 해주는 것이 정의다. 이 대표의 기술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법률가로서의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되거나 자신의 기술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유난스런 자기 방어 또한 포기할 일이다. 의정을 좌지우지하는 이 대표가 특권을 탐하고 특권계급 행세로 이익을 챙기려 할 경우 우리의 대의민주정치는 존폐의 위기에 빠져들고 만다. 자신은 특권에 의지하면서 ‘검찰 독재’운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국민의 대의원인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특권을 누려왔으면서도 당의 대의원 제도는 아예 폐지해버리겠다는 자기모순을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김은경 혁신위의 논리대로라면 대의정치 자체가 수명을 다했다. 디지털시대의 도래로 직접 민주정치가 물리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의제도의 의의에 대해 무지하거나 전체주의적 발상이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그런 극약을 조제토록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