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혹서에 겪었던 열대야가 조금씩 긴장의 끈을 놓으며 틈을 보여준다. 덩달아, 중랑천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체온을 낮춘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하늘에는 달이 마중 나와 있다. 별이 마중 나와 있다. 8월도 어느덧 하순을 향해 흘러가는 밤, 나는 바람과 달과 별과 동행하며 경춘선숲길을 산책한다. 

 경춘선숲길은 ‘경춘철도(京春鐵道)’로 개통(1939년 7월)되어 서울 성동에서 춘천까지 운행되던 경춘선이 수도권 전철 경춘선 개통(2010년 12월)으로 폐선이 되었던 곳을 정비하여 공원으로 조성한 곳. 지금의 광운대역 부근에서 화랑대역까지의 폐지된 구간이 여기에 해당한다. 72년간의 운행을 마치고 지금은 열차는 달리지 않지만, 그때의 철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곳을 걷다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국과 금계국과 강아지풀과 솔숲에서 뿜어나온 향기들이 폐경춘선 철로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풍경. 향기는 어둠에 더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퍼지는 걸까.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 속으로 파고드는 듯하다. 주변 나무들이 발산하는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문 채 어슬렁어슬렁 철로를 산책하는 고양이의 모습도 눈에 띈다. 고양이가 걸어 나온 쪽에는 달빛도 피해 가며 가로등 불빛에도 몸을 숨기고 있던 어둠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 인근 동네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발걸음과 수다 소리가 철로에게는 외로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로는 꽃과 동물과 사람으로 한여름 밤이 즐거운 축제인 것만 같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실어나르던 경춘선이었지만, 지금도 그 철로가 쓸쓸하지도 않고 한가하지도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철로가 여전히 평행선으로서의 외형을 잃지 않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평행선이 갖고 있는 긴장감이나 팽팽함은 이미 본성을 상실해 버린 듯. 어느 젊은 부부가 평행선 철로에 들어가 서로 손을 잡고 걷는다. 다정하게 침목 위를 걸으며 한 발걸음씩 이동하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들에게 평행선은 서로의 길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이정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철로 안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면, 공동으로 일구는 텃밭이 자리 잡고 있다. 고추, 가지, 상추, 방울토마토 등이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은 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고양이가 불쑥 나타나 허기를 채우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자연스럽게, 이 텃밭은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공릉동 도깨비시장 앞을 지나, 경춘폭포와 벽화 글과 그림 등의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지난다.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위에 있는 아파트나 여러 주거지에서 나온 불빛들도 철로 쪽으로 피서 나온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옛 화랑대역으로 가면, 불빛 정원이 자리 잡고 있는데, 보는 내내 빛은 화려함보다는 우리에게 어떤 그리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바람과 달과 별과 동행하는 나를 흠뻑 적셔주는 땀과 함께 찾아오는 상쾌함. 돌아가는 길에 철로를 거니는데, 문득, 그리운 사람에게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 문자를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