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인생에서 ‘60세의 벽’은 충격이다. 60세가 되면 은퇴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약속이다. 은퇴는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생의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면서 자칫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분초 단위의 빡빡한 삶이 느슨한 삶으로 바뀌면서 변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싫고 퇴직 후의 부정적인 모습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너무 기운을 잃고 풀이 죽을 이유는 없다. 은퇴 후의 세상도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일이 닥치기 전까지 걱정이 많지 막상 일이 벌어진 뒤에는 견딜힘이 생기고 또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다. 인생은 어느 시기이건 그때만의 의미가 있고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기죽지 말자.

좋은 것이 늘 좋으리란 법도 없고 나쁜 것이 늘 나쁘리란 법도 없다. 은퇴라는 새 길도 즐겁고 좋을 수 있다. 그러면 괜찮은 것 아닌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는 변해가는 것이다. 꼭 예전의 방식을 고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직장생활을 하듯이 열심히 고민하고 대비해서 은퇴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다.

“퇴직해 보세요. 재미있어요.”
은퇴를 앞둔 후배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은퇴 직후에는 놀랍고 두려워 당황스러웠지만, 몇 년 지나서 정신 차리고 보니 그럭저럭 살만하다. 요즘은 오히려 여유롭고 재미있다. 싫은 것 하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것만 해도 된다. 손주 돌보고 운동도 하고 틈나면 글도 한편씩 쓰고, 괜찮은 삶 아닌가. 남은 인생이 짧다는 것 말고는 노년이 젊은 시절에 비해 못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를 옭아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로움은 구할 때까지 어렵지, 겪고 나면 무척 시원하고 행복하다. 자! 60세의 벽, 한번 깨트려 보라.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평생 자유롭게 살아본 적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은 이참에 잘됐다 생각하고 자유를 누려보라. 불안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이제 무엇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만 생각하면 된다.

스스로를 은퇴자로 치부하고 삶에서 한 발 물러서지 말자. 60세는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하여 새 출발을 하는 시기다.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아있다. 신체적, 지적 능력도 한창이다. 우리들의 몸은 쓰지 않으면 굳어지고 퇴화한다. 늙었다고 생각하면 몸은 빠르게 노화하고 생각의 물줄기는 말라버린다. 삶에 대한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생의 현장에 서 있어야 한다.

우리 앞에 있는 은퇴라는 벽은 한계가 아니라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벽에 부딪혔다는 것은 가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넘고 갈 것인가, 멈춰 설 것인가? 간절히 원한다면 어떻게 넘을지 고민하고 그 방법에만 골몰하면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벽에 부딪칠 것이고 그 벽을 넘고 성장할 것이다.

‘60세의 벽’은 높고 두꺼우나 벽을 넘는 방법은 있다. 이제 성공이 아니라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싫은 걸 억지로 참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나이가 들면 꼭 해야 하는 일보다 안 해도 될 일이 더 많아진다. 사회적 체면이나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데 소중한 시간을 다 써버리지 말자. 나이 들어서도 젊어보여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는 게 좋다. 젊게 보이는 데만 신경 쓰느라 삶을 챙기지 못한다면 그게 더 안타까운 일 아니겠는가?

소유에 대한 열망도 좀 내려놓자. 욕망은 무한하고 결코 끝나지 않는 탐욕으로 이어져 인생이 지치고 쇠약해진다. 탐욕과 평화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풍성하게 소유하는 것보다 풍성하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60세의 벽’을 넘으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리고 있다. 70대까지는 현역 때와 비교해 그다지 변화 없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선하게 살자.

모든 생명체는 내부 환경과 외부 환경 사이의 평형을 유지하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낙타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주머니를 지니듯이, 우리들도 은퇴하면 은퇴 환경에 적응력이 생긴다. 60세 은퇴의 벽!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