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륨과 게르마늄[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갈륨과 게르마늄[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이 국가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반도체굴기'(반도체 육성)에 미국이 전방위적인 태클을 걸고 나서자 예상대로 다시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었다.

반도체 생산에 핵심광물인 갈륨과 겔리마늄의 수출통제 카드를 들고나선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19년 5월 중국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의 대명사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겨냥해 5G용 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최근에는 4G용 반도체 수출 차단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전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과 중국 간의 반도체 전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특히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해 8월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800억달러(368조원)를 투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반도체법(CHIPS Act)에 서명했다. 이 법을 통해 투자 대상에서 중국을 철저히 배제했다.

또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니콘 등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수출 통제에 동참하도록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반도체 AI 등 3개분야에 대중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로이터통신
  바이든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반도체 AI 등 3개분야에 대중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로이터통신

이와 함께 한국·대만·일본과 함께 중국을 뺀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칩4'를 주도하고 나섰다.

 ◇中, '반도체 필수 광물' 사실상 독점...관련산업 파장에 주목

이에 중국도 대응에 나섰다. 중국은 지난 5월 21일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이 심각한 보안 위험을 초래한다며 관련 제품 구매를 중지시켰다.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에 대응해 취한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통제[연합뉴스 제공]
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에 대응해 취한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통제[연합뉴스 제공]

이어 중국 상무부는 지난 7월 3일 수출통제법, 대외무역법, 세관법 등 규정에 따라 갈륨과 게르마늄 등 희귀광물에 대해 8월 1일부터 허가없이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반도체 핵심 소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이다.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생산과 공급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에 반격 의지를 분명히했다.

중국은 미국이 서방의 반발과 타격을 우려해 중국을 전 산업 분야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보다 강도가 낮은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전환하자 이에 대응책으로 수출통제 카드를 들고 나왔다. 또 반도체굴기에 대한 압박에 마냥 당하지만 않겠다는 의지로 두 희귀광물 수출통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유일한 최첨단 장비를 생산하는 ASML의 DUV 노광장비마저 대중 수출 규제 대상에 오르게 됐다. 사진=AP통신
  네덜란드의 반도체 유일한 최첨단 장비를 생산하는 ASML의 DUV 노광장비마저 대중 수출 규제 대상에 오르게 됐다. 사진=AP통신

EU에 따르면 중국은 갈륨과 게르마늄 세계 공급량의 94%와 83%를 각각 차지한다. 

중국이 두 금속을 사실상 독점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두 금속은 칩 제조에서부터 통신 및 군사장비용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은빛금속'으로 알려진 갈륨은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화합물 반도체, TV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 등에 쓰인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통한 공급망 규제에 나서는 한편 안전 명분을 앞세워 또 다른 규제에도 꺼내들 태세여서 우리 기업들의 원자재 확보와 수출 등에 비상이 걸렸다.(자료사진=글로벌경제신문)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통한 공급망 규제에 나서는 한편 안전 명분을 앞세워 또 다른 규제에도 꺼내들 태세여서 우리 기업들의 원자재 확보와 수출 등에 비상이 걸렸다.(자료사진=글로벌경제신문)

특히 비소화합물인 갈륨비소는 실리콘에 비해 열과 습기에 강하고 전도성이 높아 고성능 반도체 소재로 선호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회백색 금속인 게르마늄은 광섬유 통신, 야간투시경,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의 핵심소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연상태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아연과 알루미늄 등의 생산과정에서 부산물로 소량생산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중 상무장관 회담[중국 상무부 홈피 캡처]​
​미중 상무장관 회담[중국 상무부 홈피 캡처]​

중국 상무부는 두 금속에 대한 수출통제가 국가안보와 이익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또 수출 신청은 국무원의 검토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일각에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갈륨과 게르마늄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희토류 對日수출 중지 '학습효과'로 무기화 시행

희토류는 원소기호 57번부터 71번까지 란탄계 원소 15개, 21번 스칸듐(Sc), 39번 이트륨(Y) 등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이들 원소는 비슷한 성질을 가진 데다 광물 형태로는 희귀한 원소이기 때문에 희토류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계희토류 생산량[연합뉴스 자료 사진]
세계희토류 생산량[연합뉴스 자료 사진]

화학적으로는 매우 안정적이고 건조함에도 잘 견딘다. 또 열을 잘 전도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스마트폰, 원자로, 태양광 패널, 군사무기, 반도체, 광섬유, 전기차 배터리 등에는 필수적인 물질이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과 공급에서 '슈퍼갑'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미국, 호주 등 일부 생산국들 때문이다. 특히 세계 매장량의 13%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이 채굴 과정에서의 높은 비용과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른 시장성 문제 및 환경오염 우려 등으로 채굴을 중단하면서 희토류 시장의 주도권을 중국 손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희토류 세계 매장량은 23%가량이지만, 생산량은 90%를 차지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일본과 갈등을 빚자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를 취했다. 무기화를 시행한 것으로, 결국 일본은 굴복했다. 

중국은 또 지난 2021년 12월 말 글로벌 영향력 강화책의 하나로 남부 지역의 희토류 기업들을 '중국희토그룹'으로 통폐합했다. 국가전략자원으로 이를 관리하는 한편 희토류 채굴과 분리 쿼터를 연간 2차례씩 발표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교도=연합뉴스 자료 사진]
센카쿠 열도[교도=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카드를 꺼내든 것은 바로 희토류 수출 규제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와도 무관치 않다는 게 일반의 시각이다. 

중국 상무부의 수줴팅 대변인은 지난달 17일 브리핑을 통해 진행 상황을 엿보였다. 수 대변인은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가 1일부터 정식 시행됐고, 상무부는 일부 기업의 허가 신청을 연이어 받아 심사 중"이라며 "국가 안보와 이익, 국제 의무, 사용자, 최종 용도 등 요인을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수 대변인은 "중국의 수출 통제는 신중하고 적절하며 국가 안보 수호를 수호하고 국제 의무를 더 잘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상무부는 수출통제법 규정에 따라 적시에 이중용도 물자의 수출 통제 리스트를 조정·완비하겠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ASML 반도체 장비 공장[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네덜란드 ASML 반도체 장비 공장[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한편 산업연구원은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가 질화갈륨(GaN)에 기반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육성과 연관돼 있다는 분석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의 수출통제를 통해 본 첨단산업의 공급망 전력과 우리의 대응: 반도체, 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연구원은 이번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가 단순히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및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제한에 대한 대응조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질화갈륨 기반 차세대 반도체 육성을 통해 향후 미중 경쟁에서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SMIC[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연구원에 따르면 앞서 중국은 미중 반도체 갈등이 심화했던 지난 2021년 초 '14차 5개년 규획'에서 제3세대 반도체로 불리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질화갈륨(GaN) 기반 차세대 전력반도체 육성을 강조했다.

또 희토류, 갈륨 등 전 세계적으로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수출 통제할 뿐 아니라 대규모 생산 능력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이용한 '공급망의 전략 자산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고 연구원은 덧붙였다. 

美, '홀로서기'와 우방과의 협력체제 구축으로 대응

미국은 지난 2014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희토류·텅스텐·몰리브덴에 대한 중국의 수출 제한이 국제 무역 규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2020년 5월 국방부 차원에서 희토류 중국 의존도를 끝낼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군수품 및 미사일 분야의 희토류 원소에 17억5000만달러, 마이크로 전자공학에 3억5000만달러를 각각 지출할 수 있도록 국방생산법안(DPA)의 지출 한도를 상향조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 네이멍구의 희토류 광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중국 네이멍구의 희토류 광산[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 국방부는 이어 지난 2021년 7월 산하 고등방위연구계획국(DARPA)이 '바이오 마이닝'(bio-mining)으로 불리는 미생물을 이용, 국내자원에서 희토류를 추출하는 프로그램(EMBER) 개발 목표를 밝혔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희토류 생산국들과의 공조에도 나섰다. 지난 2020년 호주 등 다른 생산국들이 생산을 늘리면서 중국의 생산량이 지난 5년 간 최저치인 3만5448t으로 줄어드는 등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다.

최근 미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조기 경계 메커니즘' 신설이라는 공동대응책도 주목할만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일 3국이 반도체 등 공급망 혼란을 피하기 위해 관련 물자가 부족한 경우 정보를 신속히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메커니즘은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통제에 맞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中,전면 규제보다 美 대응 수위에 따라 가변적일 가능성 커" 

중국의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에 대해 전면 규제보다는 서방 특히 미국의 대응 수위에 따라 가변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바이든 미 행정부로서도 최근 몇 년 동안 미중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데다 특히 '미국·서방 vs 중국·러시아' 구도의 신냉전 심화 우려가 커진 것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월가는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두 강대국간의 긴장을 다소 완화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월가는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두 강대국간의 긴장을 다소 완화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잇따라 중국에 보내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자는 화해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기존 대중 정책의 핵심인 디리스킹에서 후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리창 중국 총리(오른쪽)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옐런 장관은 이날 중국과 공정한 규칙에 기반을 둔 건전한 경쟁을 원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AFP=연합뉴스]
리창 중국 총리(오른쪽)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옐런 장관은 이날 중국과 공정한 규칙에 기반을 둔 건전한 경쟁을 원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AFP=연합뉴스]

중국으로서도 전면 규제에 큰 부담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적으로는 호주 등 다른 공급국을 통해 갈륨·게르마늄 확보에 나서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 등 안정적인 확보책을 마련에 나서면서 중국이 '일방독주'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희토류와 리튬에 이어 갈륨·게르마늄까지 희귀 광물·금속의 생산과 공급을 맘대로 조절하는 '경제적 강압' 국가로 부각될 수 있다는 것도 우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국제사회 여론이 '반(反)중국'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만만찮다.

중국의 리튬 광산[계면신문 캡처]
중국의 리튬 광산[계면신문 캡처]

중국은 수출통제를 시작한 지난 1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수출 통제 조치는) 전면적인 금지는 아니지만, 중국에 유사한 제한을 가해 핵심 이익을 침해한 국가의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첫 번째 집단이 될 것"이라며 통제 조치가 국가별로 선별적으로 집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3일에도 논평에서 "수출 허가를 받는 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억압의 맥락을 보자면 판단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라며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에 참여한 국가들은 비이성적인 제재를 지원하면 대가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반도체공장 공동시찰하는 한미정상[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반도체공장 공동시찰하는 한미정상[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어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면 주의 깊게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이 전해졌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어쩌면 미국과 일본, 한국, 유럽연합(EU)의 눈에 중국의 조치는 단순히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도체 제재에 대응한 것으로만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 봉쇄를 계속 강화할 경우 중국이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일편 강경하게 보이는 이런 태도도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대(對)중국 수출 제한 등에 대응해 희귀 광물을 전략 경쟁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시설.(사진=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