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 등록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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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용산리’에 이어 ‘파지리(波池吏 파지촌의 아전)’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아전들이 파지마을에 들이닥쳐 마을에 농부라고는 없는데 애꿎은 고아와 과부를 결박하여 성 앞에 세워놓았다. 이윽고 도망 못 간 
선비 한 사람을 나뭇가지에다 거꾸로 매달고 세금 독촉을 하였다.  

아전들이 파지촌에 들이닥쳐               吏打波池坊
군대 점호하듯 떠들어대는데               喧呼如點兵
역병에 죽고 굶어서 죽은 시신 뒤섞여      疫鬼雜餓莩
마을에 농부라고는 없어                   村墅無農丁

애꿎은 고아와 과부 결박하여              催聲縛孤寡
앞세우고 채찍으로 등치면서               鞭背使前行
개 닭 몰 듯 몰아다가                     驅叱如犬鷄
성에 닿게 뻗대어 놓았네                  彌亙薄縣城

그 중에 가난한 선비 한 사람              中有一貧士
가장 수척하고 외로워 보이는데            瘠弱最伶俜
하늘을 우러러 죄 없음을 호소하며         號天訴無辜
원망을 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哀怨有餘聲

감히 속엣 말을 못하고                    未敢敍衷臆
눈물만 비오듯 쏟아지는데,                但見涕縱橫
아전 놈 멍청하다고 화를 내며             吏怒謂其頑
욕보여 곁의 사람들 겁주려고              僇辱怵衆情
나뭇가지 끝에 거꾸로 매달아         倒懸高樹枝
상투가 나무뿌리에 닿았네            髮與樹根平

“소견없는 놈아 무서운 줄 모르고      鯫生暋不畏
 네가 감히 상부의 명령을 거역해      敢爾逆上營
 글을 읽었으면 의리를 알 터이니       讀書會知義
 임금에게 내는 세금 서울에 바쳐야 할 것 아나냐  王稅輸王京

너에게 유월까지 말미 준 것만 해도     饒爾到季夏
너를 적잖게 은혜 베푼 일인데          念爾恩非輕

포구에 묵고 있는 큰 배가              峩舸滯浦口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爾眼胡不明

그 위세 언제 또 부리리요                立威更何時
저도 공형(상관) 지휘 받아야 하는데  指揮有公兄

한편 다산은 해남에서 도망쳐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도   세금 독촉을 하는 혹독한 아전이 들이닥쳤다. 그래서 다산은  ‘해남리
(海南吏 해남의 아전)’ 시를 지었다.  

나그네 한 사람 해남에서 달려와      客從海南來 
겁나는 길 피해 왔노라며             爲言避畏途
한참 되어도 가쁜 숨 가라앉지 않고   坐久喘未定
아직도 겁에 질린 기색이네           怖㥘猶有餘
        
승냥이나 이리를 만난 것이 아니면    若非値豺狼
오랑캐 족속을 만난 게 분명하네.     定是遭羌胡       

“세금 독촉하는 아전들이 마을에 나타나   催租吏出村 
이리저리 다니면서 마구 짓밟고       亂打東南隅    
신관 사또 명령은 더욱 엄해서       新官令益嚴      
기한을 넘길 수가 없다고 하네       程限不得踰 

주교사 소속의 만곡선이             橋司萬斛船                    
정월에 벌써 서울을 떠났는데        正月離王都         
     
주교사(舟橋司)란 전국의 조운(漕運)을 관장하고 부교를 놓는 관청이고,  만곡선(萬斛船)은 지방에서 거둔 세미(稅米)를 조창(漕倉)에서 서울로 운반하는 배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모가지가 날아감은   滯船必黜官  
종전부터 있어 왔던 예이기에          鑑戒在前車  

여기 저기 통곡소리 시끄럽지만        嗷嗷百家哭    
그것으로는 뱃사공 끄떡도 안하네.     可以媚櫂夫
     
나는 지금 맹호를 피해왔으나            吾今避猛虎         
바짝 마른 물고기를 그 누가 구해줄까?”  誰復恤枯魚”
 
두 눈에 눈물이 솟더니만               泫然雙淚垂
또 한 번 긴 한숨 내쉬네.               條然一嘯舒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다산시문집 제5권 / 시)
   
천재지변이 심하여도 세금만 걷어가는 아전. 아전은 지방 관청의 실무 집행자이고 전근 없이 한 곳에서 평생 근무하여 그 지방을 소상히 알고 있어 백성 착취가 더욱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