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느닷없이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등장해 국가보훈부와 광주광역시 사이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23일 SNS에 올린 글에 따르면 정율성은 친가 외가 모두가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집안의 음악가이다. 이미 그의 이름을 내건 동요제가 광주에서 18년 째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기념공원도 48억 원 예산이 모두 투입됐고, 올 연말에 준공된다고 한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22일 SNS에서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한데 대한 답신이었던 셈이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었고,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해서 인민군 협주단을 창단해 단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박 장관은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한국 전쟁 내내 북한군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덧붙였다.

정율성이 중국 관광객 끌어준다?

기가 막힐 일이다. 항일을 했다고 해도, 중국인으로서 중국을 위해서였다. 우리의 독립운동과는 무관했던 인물이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김일성의 군대를 위해 행진가를 작곡했고, 6‧25동란 때는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위한 음악 영웅이었을지는 모르나 우리에겐 반역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강 시장은 그를 광주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라고 하면서 기념공원 조성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투자’라는 것이다. “뛰어난 음악가로서의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광주는 정율성 선생을 광주의 역사 문화자원으로 발굴하고 투자할 것”이라며 박 장관의 공원 조성 철회 요구를 반박했다.

해명이 너무 군색하다. 중국인 관광객 유치 소재로 삼겠다면 더 효과적인 사람도 있다. ‘시진핑 주석 기념공원’이 훨씬 낫지 않을까? ‘마오쩌둥 기념공원’도 괜찮을 것 같고…. 아무리 돈벌이에 혈안이 될 정도라고 해도 불법 남침으로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키고 국토를 폐허로 만든 북한군과 중공군의 전의(戰意)를 북돋웠던 사람을 광주의 영웅으로 만들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그런 의식이라면 아예 김일성 기념공원을 만들든가. 그는 전주김씨의 후손이다. ‘보천보의 영웅’이라는 김일성은, 강 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남을 빛낸 영웅이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북한이 대규모 성지순례단을 조직해 지속적으로 보낼지도 모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절히 원했던 김정은의 방문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강 시장은 문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물론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도 세 번이나 역임했다. 그가 속한 세력은 대한민국 건국과 수호에 위대한 기여를 했던 인물들에게 친일 낙인을 찍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울시는 미투 소동 속에 자살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분향소를 시청 앞 광장에 버젓이 차리고 서울시장(葬)을 5일장으로 치렀다. 반면 하루 뒤 별세한 다부동의 영웅 백선엽 장군의 분향소는 불허했다. 청년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광화문 광장에 기습 설치했기에 망정이지 조국을 구해낸 영웅이 조문객들의 배웅도 없이 떠날 뻔했다.

대한민국 애국자에겐 인색하면서

애국가와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안익태도 소위 진보세력에 의해 친일, 친나치 인물로 몰렸다. 친북의 윤이상을 흠모해 마지않을 뿐만 아니라 기어이 그의 유해를 독일의 베를린에서 통영으로 이장하기까지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우리 애국가를 작곡하고 코리아환상곡으로 세계에 한국의 혼을 심어준 안익태는 가차 없이 배척한 것이다(‘대한민국역사와미래’ 재단이사장인 김형석 교수는 2019년 발간한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에서 이 거장 음악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군중을 앞에 두고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김정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연설을 했다. 이에 앞서 그해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는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USB를 슬쩍 김정은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그를 옹위했던(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좌파세력은 해방된 지 5년도 채 안된 시점에 전면 남침을 자행했던 김일성 왕조에는 웃음과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산업화의 영웅 박정희에 대해서는 기념관 하나 지을 수 없게 비난을 퍼부어 왔다.

강 시장은 시비를 멈추고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그런데 ‘역사’라는 인간은 없다. 평가는 사람이 한다. 정율성은 이미 역사에 편입된 인물이다. 이론이 있을 수 없는 평가가 내려져 있는데 강 시장이 재평가를 요구하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도 논란은 이어질 게 뻔하다. 이걸 노리는 것인가.

정율성은 중국인이니까 중국에서 기리면 된다.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냈고 공로도 많이 세웠다니까 김정은이 기념공원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니다. 광주, 호남에 정율성 말고도 후세인들이 사표(師表)로 삼을 만한 인물은 많다. 하긴 저지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예산이 다 투입됐고 연말이면 완공된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사이에 일을 불가역적 상황으로 몰아온 것이다. ‘이제 막을 테면 막아보라’는 심사인가?

강기정이 생각하는 국가 정체성은

밀양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2018년 3월 7일 의열기념관이 개관됐다. 문 전 대통령이 갑자기 김원봉 띄우기를 시도하기보다 오히려 앞선 시점이었다. 문 정부의 김원봉 서훈 기도는 국민적 반발로 무산됐다. 1948년 남북협상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에 갔다가 거기 눌러앉았던 인물이다. 국가검열상‧노동상‧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고위직을 누렸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동란 수행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런 사람에게 훈장을 준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서 서훈은 좌절되었던 것인데 그보다 전에 이미 의열기념관이 생겨나 있었던 거다(의열단은 김원봉 등이 1919년 조직한 항일 무력독립운동 단체).

통영에는 윤이상 기념 공원이 2010년에 개장됐다. 당초엔 ‘도천테마 기념관’이었다가 2017년에 ‘윤이상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그 이듬해 묘소도 베를린에서 옮겨왔다. 친북행적으로 옥고를 치렀고 결국 독일에 귀화했고, 죽을 때까지 한국에 입국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명성은 어느 사이에 이곳에 깊고 널리 퍼졌다. 애국가의 안익태가 지금까지 ‘친일’ 낙인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윤이상은 사후에 조국에서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을 반대할 까닭은 없다. 그게 헌법 정신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1995년 사회통합 차원에서 한인사회당을 창당한 이동휘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한 것을 계기로 포상은 확대되어 왔다. 다만 북한 정권의 성립에 직접 기여한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외하는 게 옳다. 그 사람들은 북한에서 포상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정율성 기념공원은 다른 이름의 기념시설이 되어야 한다. 왜 중국 사람을 위한 기념공원을 광주시민의 혈세로 만들려고 하는가. 북한 인민군, 중공(그 때 명칭으로) 팔로군을 위한 음악 활동을 통해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부역한 사람이다. 그런 인사를 기념공원을 조성해가면서 까지 기린다는 것은 순국선열과 광주 민주시민에 대한 배신이다. 강 시장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