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국회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지난달 20일 무소속 김남국 의원에 대해 의원직 제명의견을 냈었다. 김 의원은 국회 본회의, 상임위 및 소위 활동 중에도 코인(가상화폐) 거래를 200여회나 계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자문위가 이 같이 파악하기 전까지 김 의원은 상임위 중에 두세 차례 거래를 했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2021년 말 코인을 팔아 보유했던 현금화 가능한 거래소 잔액도 한때 약 99억 원에 달했다는 것이 자문위의 잠정조사 결과였다.

코인 김남국 구하기 뜻 모은 민주당

김 의원은 당초 소속돼 있던 더불어민주당이 자체 조사를 시도하자 바로 탈당해 버렸다. 진상조사를 회피한 것이다. 결국 국회윤리심사 자문위의 조사에 회부됐다. 자신의 해명보다 훨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데다 아주 부정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특위가 특별히 고민해야 할 까닭이 없었다.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하라는 국회법 제463항의 규정을 따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특위는 한 달 이상을 머뭇거리며 결정을 미뤘다. 그러다 겨우 지난 22일에야 제명 여부를 결정할 윤리특위 제1소위원회 회의를 열기로 했다. 개회 한 시간 전에 김 의원은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소위의 민주당 의원들이 표결을 미뤄버렸다. 불출마 선언에 따라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는 이유였다.

소위원회는 30일에 다시 열렸다. 결과는 김 의원 제명 안 부결이었다. 소위 위원 6명 가운데 3명이 반대했다. 찬반이 33으로,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된 것이다. 소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의 해명이 기가 막힌다. 선출직인 국회의원을 제명할 수는 없다. 다른 중대한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도 제명을 않았던데 비하면 (당장은 자질문제 만으로 논란을 빚은) 김 의원을 제명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

이 때문에 언론들이 제 식구 감싸기라고 하는데 어쩌면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 대부분의 정서일 수 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윤리특위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윤리특위가 소위의 부결에도 불구하고 전체회의를 열어 제명 안을 가결한다고 해도 본회의 제명 안 의결 정족수 3분의 2의 벽을 넘어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국회 차원의 제 식구 감싸기정서가 작동하는 것이다.

언론들이 역대 국회에서 제명의 유일한 예였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김 의원 문제와 관련해 거명하곤 하는데 전혀 어울리는 경우가 아니다. 유신정권의 핍박을 받아, 의원직까지 빼앗겼던 김 전 대통령과 상임위 회의 중에 코인 거래에 빠져 이모(李某) 교수이모(姨母)라고 헛소리를 하던 김 의원을, 어떤 의미로든 같이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쨌든 국회의원의 자질 부족과 국민의 위임·신뢰에 대한 배신 때문에 제명된 경우는 의정사(議政史)에 없었다.

임기 말에나마 志士的 기개 발휘를

김 의원은 이후로 버젓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교육위원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남은 임기 9개월을 채울 것이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SNS를 통해 밝혔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변하면 언제든 번복할 수가 있다. 민주당도 그를 공천하기가 아주 어렵기는 하겠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진 바는 없다. 그간의 재주넘기 실력을 감안하면 총선에 그가 다시 후보로 나선다고 해도 이상해 할 일은 아닐 것 같다.

정당뿐만 아니라 국회 차원의, 이 같은 집단 이기주의가 제어되지 않는 한 의회정치의 민주적 성숙은 기대할 바 못된다. 그래서 말인데 국회의원의 자질과 자격에 대한 심사, 징계, 국회의원 정수, 예우, 세비와 수당, 보좌진 수, 특권 및 특혜, 선거구제, 선거구 획정 등은 국회의 입법권·결정권으로부터 분리해야 옳다. 국회의원은 국민 이익의 대표이지 자기 이익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해(利害)와 직결되는 사항에 대한 입법권·결정권을 자신이 갖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국민의힘 쪽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감축하자,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아마도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거 때 해보는 말 정도로 치부되고 말 개연성이 높다.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땜질식 처방으로 의정의 전면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고 세력을 키우는 입법을 못하게 하는 혁명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개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같은 개헌은 애초에 기대할 바 못된다. 이것이 현실적 조건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국회의원들의 집단 무책임, 집단 이기주의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뜻 있는 국회의원들의 지사적(志士的)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때다. 당장에 모든 것을 다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씩 고쳐갈 수는 있다고 본다.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적지 않다. 현재로서 그나마 쉬운 일이 김남국 의원 제명 안을 윤리특위 전체회의국회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다. 한국 의정사 상식으로 볼 때 불가능한 기대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를 목전에 둔 시점이다. 의원들이 대의에 순응하고 의정 개혁에 헌신하기 딱 좋은 때다.

국회의 회의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코인 거래에 매몰돼 있던 사람을 편드는 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의리에 불과하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오히려 꾀를 써서 위기를 넘기려는 동료를 도우면서 떳떳한 국민의 대표입네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불의와의 악수를 과감히 거부하는 용기로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기를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