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이곳 앞바다를 지나가는 바람의 노래도, 바다에 들어가 몸을 씻는 햇살도, 모두 옥빛, 옥빛, 옥빛이었다. 이 옥빛의 축제를 즐길 갈매기 떼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 누가 이런 빛깔을 빚어놓았을까. 이 아름다움의 근원을 묻고 싶었다. 그 옛날 어느 여인이 이곳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염원인가. 아니면 그 슬픔을 씻어주려는 해신(海神)의 배려인가. 바다는 순결의 결정체처럼 고고하다. 이곳에 설치된 등대의 역할은 항해하는 모든 배에게 이 옥빛을 전해주는 것이리라. 산다는 것이 늘 이 옥빛처럼 아름다운 빛깔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스쳐 갔다. 태평양 어느 먼 곳에서 길을 물어물어 이곳 가무이미사키까지 찾아온 크고 작은 파도여, 이 옥빛은 축복의 선물인가. 그렇게 내 몸도 마음도 온통 옥빛. 옥빛, 옥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북위 43도 20분 00초. 동경 140도 20분 51초. 가무이미사키(神威岬)의 위치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도시 삿포로에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지난 8월 하순 무렵 내가 다녀온 홋카이도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인 이곳의 바다와 주변 풍경을 보고 그 느낌을 글로 옮겨 보고 싶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도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즐겁다. 

 ‘가무이(神威)’라는 말은 원래 홋카이도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의 말로 신(神)을 의미하는 글자. 미사키(岬)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곶’이다. 가무이미사키(神威岬)를 구경하기 위해 언덕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여인 금제의 땅・가무이미사키(女人禁制の地・神威岬)’라는 나무로 된 안내표지판이 나온다. ‘여인 금제의 땅’이란 여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땅이란 뜻. 자료에 따르면, 일본 본토의 여성을 실은 배가 가무이미사키 앞바다를 지나가면 해신의 노여움을 초래해, 배가 조난하고 어업도 부실해진다고 해서 에도시대에 이곳 홋카이도를 지배하던 번(藩)이 1691년부터 가무이미사키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일본 본토 여성의 출입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와 관련한 전설 하나. 지금의 이와테현의 도시인 고로모가와(衣川)를 탈출한 무장이었던 미나모토노요시쓰네(源義経)가 홋카이도로 도망갔을 때, 아이누 수장의 딸인 차렌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야망을 버리지 못한 요시쓰네는 그녀를 버리고 그곳을 떠났던 것. 그를 연모하여 이 미사키까지 왔으나, 그 사실을 알고 절망한 끝에 바다에 투신했다는 전설이 흥미롭게 읽힌다. 차렌카가 죽을 때 “부녀(婦女)를 실은 배가 이곳을 지나면 전복해서 침몰한다”고 외친 일에서 이곳이 여인 출입 금지의 땅이 되었다고 하니, 흥미로운 한편으로 슬픈 전설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가무이미사키 앞바다가 해난 사고로 이어지는 암초가 많고, ‘마(魔)의 바다’라고 알려진 탓에 이런 전설도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옛날 어느 여인이 이곳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염원인가. 아니면 그 슬픔을 씻어주려는 해신(海神)의 배려인가. 순결의 결정체처럼 고고”한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옥빛 바다였다. 이곳의 풍광을 즐기러 왔던 사람들 모두 전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내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몸을 던진 전설 속 여인의 외침이 환청처럼 들려올 것만 같은 홋카이도의 가무이미사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