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김대업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뒤바꿔버린 놀라운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아무리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도 어떻게 대통령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것도 사기수법으로! 그런데 그는 그렇게 했다. 2002년 제16대 대선 때 이른바 ‘병풍(兵風)’이라는 것을 일으켜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날려버렸다(득표 차: 570980표). 중국 무협소설에 나오는 장풍(掌風)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손바닥에 공력을 모을 필요도 없다. 입만 열면 되는 구풍(口風)으로 당선 반보 앞에 있던 대선 후보를 나뒹굴게 만든 것이다.

하수인의 종말은 언제나 처량하다

그래놓고도 민주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김대업 등 직접 허위사실을 퍼뜨려 대선 과정과 결과를 왜곡시킨 하수인들만 처벌(그것도 잠간 동안만) 당했을 뿐 노무현 당선자는 ‘시민혁명’으로 승리했노라며 기염을 토했다. 김대업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고맙다고 하는 순간 ‘위대한 승리’는 ‘더러운 사기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수 있다. 어쨌든 하수인의 종말은 언제나 비참하다.

물론 김대업의 구풍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흑색선전 동지들의 조력을 받기도 했다. 김선용・이교식은 한나라당 이 후보의 부인이 기양건설에서 로비자금 10억 원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설훈은 이 후보가 최규선으로 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사기를 쳤다. 다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벼운 형이었다. 말하자면 칼잡이들인 셈인데, 그래도 설훈은 그 공로가 헛되지 않아, 5선 의원으로 건재하다. 그냥 건재할 정도가 아니라 기고만장이다. 2014년 10월 한국관광공사 국정감사에서도 막말 솜씨를 과시했다. 

“정년이라는 제도가 왜 있겠느냐. 79세면 집에 가서 쉬셔야지 왜 일을 하려 하느냐.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나이 많다고 핍박받던 관광공사의 상임감사 자니 윤은 3년 반전에 타계했다. 그리고 설 의원 자신은 만70세 하고도 4개월여의 나이를 살고 있다. “정년이 왜 있는지” 물어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 나이에 이른 셈인데, 그는 여전히 으스대는 모습이다. 반(反)이재명 목소리를 한참 내더니 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선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권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탄핵하자고 나설지 모르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공천심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가?

대선을 사흘 앞뒀던 작년 3월 6일 뉴스타파는 대선판을 뒤흔들어놓을 대형 의혹을 폭로했다.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 씨가 2011년 부산저축은행의 불법대출 건과 관련, 대검에 불려갔는데 윤석열 당시 중수2과장이 커피를 타줬다고 주장했다. 그것으로 사건은 무마됐다는 것이다. 이미 ‘커피 논란’은 그 이전 2월 21일 JTBC의 보도로 시작됐었다. 25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윤 국민의힘 후보에게 “왜 커피를 타줬느냐”고 따져 물었고 윤 후보는 “그런 사람 본적이 없다”고 반박했었다. 

김만배 음모 당선자 바꿔놨을 수도

그러다 대선 직전에 김만배가 인터뷰를 통해 ‘커피’문제에 대해 육성으로 밝히면서 만수위 저수지의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관련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검사가 조우형 한테) 커피 한 잔 주면서 ‘응, 얘기 다 들었어. 들었지? 가 임마!’ 이러면서 보내더래.”

이런 식의 대화였다. 윤 후보를 노리던 민주당은 물론 민주당 편향의 언론들이 일제히 퍼 날랐다. “뉴스타파 보도 직후 경향신문과 전라일보, 한겨레신문 등이 해당 내용을 받아썼고 다음날 KBS, MBC, YTN 등 방송사가 집중보도했다”(조선일보, 9.6).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선거 직전에 터뜨리는 마타도어에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흑색선전을 뻔히 보면서도 당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 측이 진위를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김만배가 선거판 자체를 바꿀 거짓 선동을 하면서 민주당 측에 귀띔을 안 했다고 하기는 대단히 부자연스럽다. 단식 중인 이 대표가 해명하거나 조사를 받아야 할 일이다. 

“형은 광야로 갈 거야. 엉뚱한 방향으로 갈 거야. 그럼 사람들이 따라올 건데 나는 묵묵히 갈 거야, 나중에 사건이 다 정리된 뒤에야 아니라고 얘기할 거야. 그땐 모든 일이 다 끝나 있을 거야.”

2021년 10월 김 씨는 조 씨에게 그렇게 말했다. 민주당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다 해결될 일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조 씨가 ‘커피 한잔’의 부담을 지라는 것이었는데 조 씨는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윤석열 검사를 아예 몰랐다는 말만 거듭했던 모양이다. 그는 언론들이 자기 말을 반대로 보도하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전해졌다.

김 씨의 황당함은 김대업 뺨을 치고도 남을 정도다. ‘광야’ ‘엉뚱한 방향’ 운운하며 군중심리를 자극함으로써 선거분위기를 격화시킬 계산까지 했다. 지능적으로 마타도어 마약을 대중의 심리 속에 찔러 넣으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표심은 크게 흔들렸다. 막바지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혼전이 되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김만배의 음모’가 당선자를 바꿔놓았을 수 있다.  

거액 오간 인터뷰 기사는 쓰레기다

‘커피 한잔’의 사기극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쓴 김 씨는 뉴스타파 전문위원이던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을 끌어들였다. 그에게 인터뷰어의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인터뷰이가 되어 윤석열 검사의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무마 스토리를 엮어간 것이다. 인터뷰 대가는 1억6500만원이었다고 하는데 신씨는 자신의 저서 3권 값으로 받았다고 우기는 모양이다. 

명색이 기자출신이면 최소한의 윤리의식은 가져야 한다. 이 대표 편을 들어 대담에 참여하는 것은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내용이 명백한 허위일 때는 거절해야 옳다. 그건 기자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허위로 대선의 판을 바꿔버리겠다는 상대의 의도를 알고서 어떻게 대담 혹은 인터뷰를 맡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기가 막힌다. 1억6500만원 때문에? 아무리 돈에 환장을 했어도 그렇지.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정의를 독점한듯하던 사람의 이 초라한 행색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음)이다.

JTBC는 6일 뉴스룸을 통해 ‘중요한 진술 누락과 일부 왜곡’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뉴스타파는 그 전날 ‘김만배-신학림의 금전거래’사실이 확인됐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매체는 “윤석열 정부와 검찰이 김 씨와 신 씨의 금전 거래를 빌미로 삼아 해당 보도가 완전한 허위였다거나 의도적 대선 개입이라도 있었다는 양 몰아가고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정부의 저열한 정치 공세와 검찰의 폭력적 탄압에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자체 조사위원회에서 진상이 밝혀진 후에 맞서도 늦지 않다. 깔끔하게 사과하고 가면 될 일을, 구차하게 꼬리를 다는 것은 자신들의 표현처럼 ‘저열한 적반하장격의 공세’다.

언론이 진실을 외면하면 사회적 해악이 되고 만다. 거액의 돈 거래를 한 당사자 두 사람의 대담 혹은 인터뷰 기사라면 내용의 진위를 가리기 전에 우선 버려야 한다. 그게 옳은 보도 태도다. 혹시 반박거리라도 있을까 해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은 ‘언론’의 간판을 내건 매체라면 부려서는 안 될 구차스런 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