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검찰 소환을 앞두고 ‘무기한 단식’을 선언하더니 결국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체포동의안 부결을 압박했다.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그러니 어쩌라고? 부결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는 20일 페이스북에 “검찰은 지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 가결하면 당 분열, 부결하면 방탄 프레임에 빠뜨리겠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제가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당하게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었다. 훗날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생각해봤다. 윤석열 정권의 부당한 국가권력 남용과 정치검찰의 정치공작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저들의 꼼수에 놀아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도 체포동의안 부결 종용

21일째 단식을 하고 있어 기력이 있는 대로 다 쇠진했을 텐데도 체포 방어의지는, 글에서 힘이 느껴질 정도로 확고해 보인다. 그 심정은 충분히 짐작이 되지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명백히 불법부당한 체포 동의안’이라면 굳이 고생스럽게 단식하고, 소속 의원들에게 부결시킬 것을 종용할 필요가 없다. 잘못이 없는데 무슨 걱정인가. 구속 여부는 검찰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한다. 법원까지 못 믿겠다면, 그건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고인의 유무죄는 법원이 가려준다. 이 대표가 판단하고 선고를 내리는 게 아니다. 검찰은 민주법질서의 수호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 기관이다. 그 검찰이 제출한 체포동의안이 불법부당한 것인지도 법원이 판단한다. 이 대표는 검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법부와 맞장 뜨자는 것이다. 선고는커녕 구속영장실질심사도 하기 전에 피의자인 제1야당 대표가 먼저 셀프 선고를 했다.

“나는 무죄다!”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한지 불과 3개월이 됐을 뿐이다. 그 때 그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이재명을 다시 포토라인에 세우고, 체포동의안으로 민주당의 갈등과 균열을 노리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제 그 빌미마저 주지 않겠습니다. 저를 향한 저들의 시도를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습니다.”

검찰이 강요한 게 아니었다. 그 자신이 으스대듯 한 말이다. 허장성세를 하는 것은 찔리는 데가 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줬다. 그는 그 이전인 지난 2월27일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도록 소속 의원들을 신칙했다. 문자도 보내고 면담도 한 결과 찬성표가 과반수인 149표에 10표 모자라게 나와 체포를 피할 수 있었다. 찬성이 139표로 반대 138표 보다 많아 그의 위상과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었지만….

그런데 그가 과거에, 시쳇말로 ‘목에 힘주며’했던 말은 이때도 자발적 부도처리가 됐다. 작년 5월 지방선거 충북지역 유세 때 그는 호기롭게 공약했다. 

“불체포특권을 제한하자는 것에 100%동의한다. 처음부터 제가 주장하던 것이다.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털린, 저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필요치 않다.”

그 훨씬 전인 2020년 9월 선거 회계부정 혐의를 받은 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자 경기도 지사이던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은 공익을 의한 것이라면서 법 앞에 평등한 나라에서 수사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4년 전, 2016년 11월엔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 “청와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잡아서 수갑 채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부결로 몰아가는 민주당 지도부

어쨌든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그는 부결을 위해 단식의 고통까지 감내하면서 버티고 있다. 이 작전이 맞아들어 당내에서는 부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다. 당 지도부가 어제 오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게 적절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이를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각자 알아서 투표하되 지도부의 의지를 잘 새겨보라는 말이겠다.

더 무서운 압박도 가해졌다. 친명인사인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은 19일 유튜브채널 ‘새날’에 출연해 비명계 의원들을 압박했다.

“이번에 가결표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서 나는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적어도 당 대표가 목숨을 건 투쟁 중이다. 다 떠나서 한 가지만 묻자. 윤석열 정부는 검사 독재 정권인가, 아닌가. 적어도 검사 독재 정권에 동의하는 의원들은 무조건 부결해야 한다. 그게 압도적 다수라면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한몫 거들었다. 이 대표의 병상을 찾아가 위로 격려했다. 단식 중단을 권고했다고 하지만 “충분히 우리가 공감하고 또 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함으로써 이른바 ‘단식투쟁’을 독려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어쩌라는 것인가? 국가 경영을 책임졌던 사람이 피의자의 국가사법체계에 대한 저항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다니….

총선을 목전에 둔 의원들로서는 이보다 더 직접적이고 위압적인 협박도 달리 없다. ‘목숨을 건 투쟁’ 운운했지만 그건 이 대표 자신이 체포를 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 책임을 국민의 대표인 소속 국회의원들이 무조건 지라는 것이다. 

불체포특권은 법이 보장‧보호하는데 국회의원의 자율권은 소속 정당, 당 대표 지지세력의 이름으로 박탈되는 상황이다.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다. 사적인 범법행위까지 보호하는 것은 명백히 입법취지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범죄자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연히 검찰의 직무수행도 법에 의해 보장‧보호를 받아야 한다. 

민주당내 친명계는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을 때 이미 ‘정당한 영장 청구’를 조건을 내 걸었었다. 민주당이 부당한 영장 청구라고 판단하면 불체포특권을 행사하겠다는 황당한 억지를 태연하게 부린 것이다. 법치를 표방하는 나라의 거대정당이 이런 인식을 공공연히 떠들어 자랑하는 것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게 궁금하다. 

목소리 크지만 알고 보면 졸보들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영락없는 졸보들이다. 용기와 배짱과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치졸한 행태를 보일 리가 없다. 다짐이 거창하다는 것은 지킬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소리가 크다는 것은 겁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부터가 구속될 것이 두려워 ‘단식’ 뒤에 숨었다. 

‘정치 수사’란 그들이 말하는 ‘정당한 영장 청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그 경우에도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정치 수사’이기 때문에 부결시키라고 한다. 이 대표처럼 식언을 밥 먹듯 하는 정치리더는 보느니 처음이다. 

“‘존경하는 박근혜’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자신의 말에 대한 자기 평가다. 그러니 자신의 말은 믿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도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고 흥미롭다. 오직 공천 때문일까 아니면 조직으로부터의 고립이 주는 소외감 공포감을 피하기 위해서인가. 
민주당 사람들, 어떻게 갈수록 이처럼 철저히 망가질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거대정당, 직전 집권당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재명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공천, 당 대표 선출, 개인 사법리스크 당 차원 대처’ 등, 말도 안 되는 무리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긴 그들의 상식은 일반인들의 그것과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헛발질을 해대더라도 지지 유권자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팬덤정치, 진영정치의 묘미다.”

이런 자신감으로 내년 총선 승리를 확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대표와 측근들의 ‘공천 압박’이 먹혀드는 것일까? 민주 의원들이 공천 불안 때문에 이 대표의 방패막이로 나설지,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도 살려 ‘부결’ 공약 실천에 동참할지 오늘 오후에 판가름 난다. 민주당은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면 체포동의안은 가결될 것이다. 또 다시 부결시키고 만다면 민주당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셈이 된다. 역사적으로 어떤 나라 혹은 세력이 패망할 때는 언제나 뚜렷한 전조가 있었다. 무모한 집단적 안일과 무책임이 그걸 무시하도록 유도하고 모든 구성원이 레밍처럼 그 뒤를 따랐을 때 결과는 ‘패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