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지난 9월 20일은 ‘조선해양의 날’이었다. 선박 수주 1,000만 톤을 기념해 1997년 제정된 이날 기념식에서는 많은 조선업계 종사자들이 훈장과 표창을 받았다. 이들은 이런 찬사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 개발의 역사는 조선산업을 빼고는 얘기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지구상 바다에 떠다니는 5만 톤 이상의 선박 85%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지난해 전 세계 발주량의 37%인 1,559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우리나라가 수주했고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는 압도적 세계 1위다. 같은 기간 전 세계의 선박 발주량이 22%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 조선산업의 위상은 눈부시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의 수주량 증가에는 글로벌 화두로 떠오른 탄소중립의 영향으로 조선업계의 강화된 환경규제가 큰 역할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선박의 발주량이 증가했는데, 우리나라 조선 기업들은 202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친환경 선박의 전체 발주량 2606만 CGT 중 50%인 1,312만 CGT를 수주했다. 국내기업들은 또 친환경 선박의 대표주자인 LNG 추진 선박 발주량의 54%를 수주하며 해당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기술의 개발도 괄목할 만하다. 그동안 친환경선 수주에서 LNG(액화천연가스)나 메탄올을 연료로 하는 선박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있었으나 LPG 추진선은 없었기 때문에 선박 발주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IMO 제107차 해사안전위원회(MSC)는 LPG 추진 선박에 대한 국제가이드라인을 승인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우리나라 해양수산부가 2019년 제안한 내용을 바탕으로 4년간 IMO 회원 195개국의 검토와 보완을 거쳐 친환경 LPG 선박 기준으로 잠정 승인됐고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기준이 채택되면 LPG 추진선 발주가 늘어나게 되면서 한국 조선사가 수주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첫 해외 수주는 1976년 대만에 참치 어선 20척을 수출한 것이다. 당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협력 자금 614만 달러를 대만에 지원해 국제입찰로 건조한다는 정보를 얻자, 박정희 대통령은 ‘적자가 나도 좋으니 선박 수출의 물량을 트라’고 지시했다. 어렵게 입찰에 성공했지만, 인도까지는 먼 길이었다. 대만 선주들의 불신과 외국산 기자재 도입의 어려움, 게다가 조선소에서는 파업까지 일어나 첩첩산중이었다. 그러나 배를 조립하는 4개 팀을 구성해 5척씩 건조하고 먼저 마치는 팀이 다른 팀에 합류하는 돌관공사 끝에 배를 인도할 수 있었다. 대만 선박 수출은 단기적으로는 10억 원의 적자를 냈지만, 그때의 투지와 경험, 기술은 조선이 우리나라 수출의 효자로 떠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누가 뭐래도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현대에서 세계 최대규모의 조선소를 건설하겠다 했을 때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시만 해도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한 1만 7천 톤급 선박이 국내에서 가장 큰 배였다. 26만 톤급 초대형 선박을 만드는 조선소를 짓는다는 계획은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자금을 확보하고 선박 발주를 받아내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을 건조하는데 성공했다. 유조선 설계 도면과 백사장 사진, 축척 5만분의 1 지도,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는 거북선이 당시 그가 가진 전부였다. 한국이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는 그의 논리는 지금도 거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다.

허허벌판에서 시작한 우리나라의 조선업은 1999년 일본을 누르고 세계 1위가 됐다.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 조선소의 저가 수주 공세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에도 R&D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부활은 너무나 값지다.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이 한 때 중국에 내줬던 세계 1위의 자리를 찾아오게 한 비결이 됐다. 거기다 조선산업의 막대한 전후방 경제효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 한국경제도 부활의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는 점은 더 큰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