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 연구소장.
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 연구소장.

정부가 노동조합에 지원하던 국고보조금 액수를 줄이고 대신 비노조 근로자 단체와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MZ노조) 등 신규 노동단체에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우자 지원대상이 된 MZ노조가 국고보조금을 받는게 타당한지에 대해 내부 토론을 벌였다. 토론 결과, 이 노조는 정부지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 

정부 예산을 받게 되면 노조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해칠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양대노총이 정부 보조금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상황에서 MZ노조의 이같은 결정은  기득권 노조와 다르게 담합구조를 깨고 정상적인 노동운동을 펼치겠다는 선언으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정부나 기업들은 그동안 파업권을 쥔 노조의 힘에 눌려 적당히 타협하며 금품 지원을 하는등 짬짜미 관행을 키워왔다. 이러한 관행은 노동운동의 건전성을 해치고 노사관계를 왜곡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의 18개 지역본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건물들을 공짜로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가 이들 단체에 임대료와 인건비, 시설 보수 등의 명목으로 지원한 금액만 지난해 50억원을 넘고 있다. 서울은 한국노총이 1992년부터 서울시 노동자복지관을 31년째, 민주노총은 서울시 강북 노동자 복지관을 2002년부터 21년째 사용하고 있다. 

노조가 회사측에 금품·편의 등을 요구하고, 사측이 노조를 달래기 위해 이를 들어주는 ‘노사 간 짬짜미’ 관행도 성행하고 있다. 전용차나 현금 지원, 법적 한도를 초과하는 노조전임자(근로시간면제자) 인정 등 형태가 다양하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조합비를 걷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근로시간면제자 임금은 회사측으로부터 지원받는 노조가 여러곳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교통공사노조의 경우 규정상 노조 전임자는 32명인데 무려 315명을 전임자로 두다 적발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5월부터 3개월간 노조가 있는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 480곳의 근로시간면제 제도 운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63곳(13.1%)에서 위법 사례를 확인했고 전체 전임자 3834명중 24.7%(948명)이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회사측이 과도하게 근로시간 면제를 적용하고 노조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을 부당 노동 행위로 간주해 금지하고 있지만 정부는 노정관계 악화 등을 의식해 제대로된 감시·감독을 벌이지 않았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노조가 정부나 회사측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운동의 역사와 태동 배경이 서로 달라 운동방향이나 방식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 나라 노조들은 회사나 정부로부터 일체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다. 노조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노조비에서 충당한다. 노조와 회사는 서로 존중하면서 견제하지만 노조가 회사로부터 도움받는 행위는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다. 선진국에서 노사관계를 자동차바퀴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는 자동차 바퀴처럼 서로 협력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나가지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건강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노동운동에 비춰어볼 때 우리나라 노조 행태는 너무 후진적이고 퇴행적이란 생각이 든다. 정부가 “회계가 투명하지 않은 노조에 대해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노동계는 “돈으로 노조를 겁박한다”,“노조 망신주기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회계장부와 보조금을 엮어 마치 노조가 지원금을 부정 유용한 듯 엮으려는 치졸한 계략이다”라는 비판까지 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태다. 

노조가 스스로 노조비로 전임자임금과 사용할 사무실 등을 해결한다면 아무 문제될게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조치를 마치 ‘노조탄압’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구시대적 노동운동에 다름아니다. 이제 노조도 내부 개혁을 통해 전임자임금, 사무실 비용 등은 조합비를 통해 충당하고 파업권을 앞세워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하는 구시대적 노동운동은 청산해야할 때다. 그래야 자주적 독립적 노동운동이 가능해지고 당당하고 건강한 노사관계가 정착될수 있다.

정부와 사용자도 노조를 달랠 의도로 적당히 지원하는 짬짜미 관행을 깨야 한다.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줄이고 노동조합 전임자와 사용자의 운영비 지원에 메스를 들이대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당연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