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칼럼니스트
최재식 칼럼니스트(전 공무원연금공단이사장)

얼마 전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은 공산군 응원대장이라며,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강기정 광주시장은 정율성은 시진핑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꼽은 사람이라며, 적대 정치는 그만하고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여야 정치권의 정쟁으로 확산되었다. 여당 정치인들은 정율성은 중국에서 활동하며 나중에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했고 해방 후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작곡했다며, 공산당 응원단장을 자처한 인물을 기념하는 행태에 큰 우려를 표했다. 야당 정치인들은 냉전은 이미 30년 전에 끝났는데, 철 지난 이념 공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사실관계를 한번 살펴보자. 정율성, 광주 출생인 그는 일제 치하에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활동을 시작으로 항일운동을 했으며, 중국공산당의 선전 인재로서 그의 음악활동은 주목받을 만했다. 해방 후 연안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좌파세력이 북한으로 건너갈 때 함께 갔고, 북한에서 활동하다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일본 패망 전까지는 중국이나 우리가 모두 항일이라는 공동의 기치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비록 공산주의자였더라도 기피대상이 될 수 없다. 한중우호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이때까지만 본다면 맞다. 문제는 그 이후의 행적이다. 북한의 6.25 남침과 중공군의 개입으로 77만여 명의 우리 국군과 유엔군 사상자가 생겼고, 온 나라가 절단 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명백히 적의 편에 있었다.

한쪽은 전쟁 끝난 지 오래되었으니 이념논쟁 그만하고 항일운동을 한 고향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를 기리자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아직도 북한이 핵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지난 일이라 잊고 적의 선봉에 섰던 사람을 이 나라에서 기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무엇이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데 합당한 인식인가에 따라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답은 명백하다.

하지만 여기서 어느 편이 옳고 그름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자기들 주장이 100% 맞고, 객관적이라고 믿는 태도를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객관적인 것은 있을 수 없고, 엄밀히 말하면 간주관성(間主觀性, inter-subjectivity)을 갖고 있을 뿐이다. 간주관성이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간의 공통된 인식이다. 각자의 주관이 만나 서로 보완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보다 객관성을 띤 간주관성이 만들어진다. 상호주관성 또는 집단주관성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친구들을 보고 “야, 이 도다리 같은 새끼야!”라고 놀려댔다. 그땐 왜 ‘도다리’라고 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도다리는 두 눈이 모두 오른쪽 볼때기에 붙어 있어서 다른 쪽은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친구를 도다리라고 놀려대던 놈들은 완벽한 객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100% 광어일 수도 있고, 광어 비슷한 무리의 어종일 수 있다. 광어는 두 눈이 모두 왼쪽 볼때기에 붙어 있다.

도다리와 광어 …  두 눈이 모두 한쪽에 쏠려있어서 반대쪽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점점 도다리와 광어가 되어간다. 신문이나 방송도 자신이 선호하는 것만 보고, 성향이 다른 쪽은 보지 않는다. 괜히 성향이 다른 쪽 것을 보면 스트레스만 쌓이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같은 SNS 활동에서도 욕해대고 시비 거는 친구들은 차단해버리고, 서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한다. 그게 편해서다.

이렇게 끼리끼리만 생각을 공유하고 그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해나가니까 벽은 점점 더 견고해진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정보를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 엄마 아니면 세상 무너지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거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어디 있나? 항상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소통으로 사유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가 100% 옳다고 믿고 있는 것 … 그건 100%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