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검찰은 저를 직접 수사하겠다고 벼르는 모양입니다. 10년 간 털어왔지만 어디 한 번 또 탈탈 털어보심시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 이재명은 단 1원의 사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12월 9일, 자신의 측근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기소된 것과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그가 걸핏하면 해온 말이기도 하다). 오래 동안 범법 혐의를 받아왔다는 뜻이 된다. 결백했다고 하더라도 자랑거리는 아닌데 유난스레 자신감을 과시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탈탈 털리고 있던 사람이 성남시장-경기도지사-집권당 대통령 선거 후보-국회의원-제1야당 대표의 거창한 코스를 거침없이 섭렵했다는 것은 훗날 전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리짝 때울 종이 한 장 없었던 청빈

단 1원의 사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는 말부터가 몹시 거북하다. 자신의 부인이 성남시와 경기도 공무원을 시켜, 법인카드로 구매했다는 초밥 등 음식과 과일, 그리고 제수(祭需)에는 수저를 전혀 대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게 진실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단 1원’을 강조했으니까 하는 말이다. 거짓말에는 허풍이 섞인다.혹 그런  건 아닌가? 

고려 말에 급제하여 벼슬이 보문각(寶文閣: 경연과 장서를 맡아보던 관청) 직제학(直提學: 고려시대 정4품 벼슬)에 이른 안성(安省)의 이야기다. 그는 한쪽 눈이 유난히 작아서 소목(少目)이라는 이름을 가졌었는데 임금이 그 연유를 묻고, 그 두 글자를 합쳐서 성(省)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는 고려조에 이어 조선조에서도 지방관을 지냈는데 강원도 도관찰사, 개성의 유후(留侯: 조선 초기에 개성 유후사에 속한 정이품 벼슬) 등을 지냈다. 그는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었다. 평양백(平壤伯)으로서 임기를 끝내고 떠나는데 짐이라고는 책을 담은 고리짝 하나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심하게 꿰져서 책이 빠져나올 지경이었다. 부인 송씨가 안타까워서 한마디 했다.

"어찌 고리짝이 꿰졌는데도 고쳐 바르지 않으십니까?”

안성이 대답했다.

“내가 가진 휴지가 없는데 무엇으로 고쳐 바르겠소.” (동유사우록, 한국기담일화집 재인용)

이 정도의 청렴이라면 ‘단돈 1원’을 운위할 자격이 있다. 과연 이 대표는 지방관으로서 그만한 검소와 청렴을 실천했는지 의문이다. 문제의 ‘초밥’ 때문에라도!

검찰에 소환 당했을 때는 자기가 지정하는 일시에 가겠노라고 기세가 등등했다. 출석해서도 검찰청 앞에서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와 폭정에 당당히 맞서겠다.…공포통치 종식과 민주정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제물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정작 조사를 받을 때는 진술서라는 것을 제시하고 입을 다물었다고 알려졌다).

 

판사 앞에 갈 때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 이 대표는 기소가 임박해지자 갑자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며칠 굶은 끝에 드러누워 버렸다. 누가 보기에도 버티기였다. 그러는 사이에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가세한 결과였다. 그는 단식을 멈추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대단히 인상적이게도 검찰청 앞에서는 말이 많던 그가 법원 앞에서는 한마디도 않고 들어갔다. 구속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쥔 판사 앞에 가면서 이미지 관리를 한 것이다. 

거동하기가 아주 어려운 처지임에도 지팡이까지 짚고 법원에 출두했다. 법적 절차를 담담히 겸손하게 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정성도 한몫했던지, 판사의 결정은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새벽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긴 하다. 거대 야당 대표의 책무와 역할을 감안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기각의 상징적 의미를 간과한 유 판사의 결정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사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을 요구하며 기세를 올렸다. 마치 그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라도 난 것 같은 분위기다. 영장기각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라는 의미만 갖는다. 유무죄 판단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와 개딸들에게는 이미 ‘무죄’ 확정 판결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밀어붙이면 결과적 승리는 이 대표와 민주당에 주어진다고 확신하는 인상이다.

국가 형사사법체계가 특정인 한 사람에 대한 수사 및 기소과정에서 이처럼 심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민주당 사람들이 걸핏하면 외쳐온 구호를 흉내 내지 않을 수 없다. 

“이게 나라냐?”

 

영장 기각되기 무섭게 “한동훈 탄핵”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은 ‘법 앞의 평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법하다.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법 밖의 존재’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반 피의자에게 이 대표 정도의 중범죄 혐의와 이를 입증할 정황증거(직접 증거가 없다고 우겨대니까)라도 있다면, 그래도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은 같을까? 

영장심사에서 유 판사는 구속 사유의 유무만이 아니라 유무죄 여부까지 판단한 인상을 주는 ‘기각 사유’ 설명서를 공보관을 통해 기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는 게 판사의 판단이라면 본안 재판까지 갈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문외한의 느낌이지만 설명이 길다는 것은 자기 논리와 결정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의 결여를 뜻하는 것일 수 있다. 군색하게 여겨질 장문의 사유서를 왜 발표했다는 것인가?  

이 대표가 구속을 면한 것이 자신과 민주당에는 큰 행운과 기회가 되겠지만 그를 의심해 왔던 국민들의 법감정에는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줬다. 어느 가치가 중요한지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다.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이 대표를 구속시키지 않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영장 기각 사유서 내용에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어쨌든 이 대표와 민주당의 친명계는 전화위복의 대반전을 이끌게 됐다. ‘검사독재’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총선표심을 뒤흔들어댈 게 뻔하다. 온갖 선동이 난무하는 가운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치는 정점으로 치달을 것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결속한 정치세력의 욕구가 우리 사회를 해체 수준의 위기로 몰아가게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집단에 속하지 않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달리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