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김의겸 의원이 개그에 소질이 있어 보여서 합당형식으로 영입한 것일까? 아니면 김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 때부터 언행에 좀 어리숙한 데가 있으니까 데려와서 대여(對與) 공격수로 쓰면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기자출신이라니까 잘하면 공격의 효과를 더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김 의원의 이미지는 흡사 어릿광대다. 그가 이 역할을 아주 제대로 해낸 것이 작년 10월 24일 법사위 국정감사 때였다. 그는 질의 순서까지 앞당겨 가며 첫 질문자로 나서서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그러니까 다른 의원들에 앞서서 황당한 개그 한마당을 펼친 어릿광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청담동 술자리 코미디극의 작가

그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에 앞서서 준비해야 할 사항을 아주 친절하게 고지해 주기까지 했다. 

“제가 한동훈 장관께 질의를 할 건데, 한 장관께서 미리 좀 개인 일정을, 핸드폰이든 수첩이든 확인해주고 제 질의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짜는 7월 19일, 20일 이틀입니다. 오늘은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오신 만큼 발언을 좀 더 정확하고 명료하게 받기 위한 것입니다. 답변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소리를 착 깔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다음 순간 한 장관이 당할 일격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시위를 있는 대로 당겨서 쏜 화살이 과녁으로 날아가기는커녕 활이 부러져 자기 발등에 떨어지고 말았다. 국민적으로 유명해진 코미디극 ‘청담동 술자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했고 문화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선임기자 등 중요한 직책을 두루 거쳤다고 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청와대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팩트체크’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인식이 투철하고 경험과 역량이 뛰어날 것이었다. 그런 그가 한 장관만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까지 궁지로 몰아넣을 결정적 증거를 잡았노라며 의기양양했으니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불문가지였다. 윤석열 정권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김 의원은 영웅으로 떠받들릴 일만 남은 셈이었다. 

그런데 김 의원은 김대업 아류가 되고 말았다. 김대업은 있지도 않았던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라는 것으로 2002년 대통령 선거 판도를 뒤집었다. 김 의원도 없었던 술자리를 가지고 (아마도) 윤 정권을 엎어버릴 꿈에 부풀었다. 둘 다 실패했다(작년 대선 직전에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김만배-신학림 대화와 일부 언론의 거두절미 왜곡 보도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반인이었던 김 씨는 감옥에 갔으나 국회의위원인 다른 김 씨는 오히려 돈벌이(후원금)까지 하며 건재하다.

출장비 공개 압박이 부메랑으로

이후에도 김 의원의 기행은 이어졌다. 언론사 데크스 출신이 팩트체크를 아예 무시하고 ‘제보’를 받으면 바로 터뜨리고 보는 작태를 ‘기행(奇行)’ 말고 달리 뭐라고 표현할까. 내년 공천을 확보하기 위한 눈물겨운 고투(苦鬪)로 보이긴 한다(그것이 가외의 소득까지 안겨주기도 했다. 말썽이 될수록 후원금이 밀려들고 진영 내에서 격려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그런데 팩트 무시에 재미를 붙인 이 막무가내 나팔수의 계산이 이번에는 많이 빗나갈 모양이다. 지난달 1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미국출장비’를 공개하라고 한 법무장관을 압박했었는데 상황이 엉뚱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럴 땐 한 장관이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추궁의 재미를 볼 수가 있는데 오히려 되치기를 당한 형국이 된 것이다. 

왜 출장비를 공개하지 못하느냐. 그게 국가안보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식비나 교통비, 그리고 호텔비일 텐데 그걸 왜 못 밝힌다는 것이냐. 밥값에 대해 말을 못할 것 같아 피해가는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한 장관을 몰아세웠는데  ‘식사 파트너’가 누구였느냐를 특히 알고 싶어 하는 인상이었다. 미국서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느냐를 이실직고하라는 뜻으로 한 장관은 듣고 있었다.  

한 장관은 작년 7월 미국 뉴욕남부연방검찰청을 방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이 북한 가상화폐 범죄와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김 의원은 주장했었다. 그는 출장비 내역은 당연히 밝혀야 하는 것이고, 법원에서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 장관은 ‘저의 있는 질문’으로 인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겠다고 답변했다. 동시에 지난 정부 장관들의 경우도 밝히겠다고 말하면서 다시 설전이 벌어졌다. 김 의원이 “또, 또 지난 정부”라고 반박하자 한 장관은 “지난 정부 아니면 이승만 정부와 비교하느냐”고 맞받았다. 김 의원은 쐐기를 박았다.
“약속하신 겁니다. 국민들 앞에서.”

자기 인격 타락시키는 선동 정치

법무부는 4일 조선일보의 ‘정보 공개 청구’에 응하는 형식으로 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 재직한 법무부 장관들의 출장비 내역을 공개했다. 지난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은 2021년 6박8일간 수행원 11명과 함께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총 1억713만원을 썼다. 고약한 것은 수행원을 5명으로, 경비를 6800여만 원으로 속인 보고서를 공무원 해외 출장 정보 사이트에 올렸다는 사실이다. 박 당시 장관은 출장 일정 대부분을 비정부기관 방문으로 채웠다. 국제기구는 UN뉴욕본부에서 실장 2명을 만난 것이 전부였고 미국에서 만난 104명 중 한국인이 최소 43명이었다. 

반면 한 장관은 7박 9일 동안 3명의 수행원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면서 총 4840만원의 경비를 썼다. 국가기관 4곳, 국제기구 2곳을 방문했다. 비정부기관을 찾거나 한국인을 만난 경우는 없었다. 법무부가 밝히기로 그렇다. 지난 정부 장관의 공인의식이 참담할 지경이다. 유탄을 맞은 박 의원은 자신과 한 장관의 이런 차이를 알고도 법사위 때마다 공격수 노릇을 했을까? 

기세등등하게 출장비 내역을 밝히라고 윽박지르던 김 의원은 부메랑에 맞고 말았다. 하긴 변명의 여지가 있긴 하다. 작년 11월 한 시민단체가 한 장관의 미국 출장 경비 집행 내역과 증빙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이 단체가 승소했다. 김 의원의 압박이 아니었어도 공개는 시간 문제였다. 그렇지만 법무부가 항소를 포기하고 바로 공개하도록 한 공(?)은 단연 김 의원의 몫이다. 코미디 한 마당을 펼친 것인지, 생각이 모자라 자책골을 차 넣고 만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지만….

김 의원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의 공격수들은 면책특권이란 보호막 안에서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내고 있다. 책임의식은 전혀 없어 보인다.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말이라면 참이든 거짓이든 가리지 않는다. 거짓이라도 우기면 진실이 된다고 확신하는 빛이 역력하다. 선동의 덕을 누려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거짓주장과 선동은 진실성 도덕성 책임성을 마비시킨다. 정치적 수단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정치인 각자의 인격을 재구성한다. 자신의 내면까지 타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