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면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되는 증인·참고인 출석 명단이 공개된 뒤 나온 대체적인 ‘한 줄 평가’다.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주요 쟁점 사항은 누가 뭐래도 은행권 횡령 등 대형 금융사고와 가계부채 급등 문제였다.

특히 금융권 사상 최대 규모인 3000억원대 횡령사고가 터진 BNK경남은행을 비롯해 고객사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127억원 부당이득을 챙긴 국민은행, 그리고 고객 동의 없이 1600여개의 증권계좌를 고객 몰래 개설한 DGB대구은행까지.

국감을 2개월여 앞둔 지난 8월에만 잇따라 굵직한 금융사고가 터지자 금융권 안팎에선 진작부터 내부통제 소홀에 대한 책임 추궁을 위해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이 증인대 앞으로 줄줄이 소환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러한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증인명단에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국감 초장부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와 함께 ‘전형적인 은행 CEO 봐주기 국감’, ‘맹탕 국감’ 우려 등의 쓴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등 해외 출장을 구실로 빠진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을 대신해 각 은행장이 출석한 바 있다. 당시 대규모 횡령과 이상 외환거래 등 금융사고에 대한 따끔한 질책을 받은 은행장들은 고개 숙여 사과하며 한목소리로 내부통제 개선을 약속했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은 올해 역시 공교롭게도 국감 시기와 겹치게 해외 출장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다. 이에 ‘국감 회피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에도 사실상 불참이 예고된 ‘회장님들’을 대신해 은행장들이 국감장 출석 총대를 멜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발되면서 작년보다 더 싱겁게 끝날 여지가 커진 게 사실이다.

실제 금융권 국감의 문을 연 지난 11일 금융위원회 대상 국감의 경우 내부통제 이슈와 관련해 증언할 수 있는 금융사 핵심관계자들이 모두 불참하면서 다소 맥이 빠진 분위기로 진행됐다. 가계부채 급등 문제를 두고는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실패의 책임을 묻는 공방이 뜨겁게 이어진 반면에 또 다른 화두인 내부통제 부실 문제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국감은 끝나지 않았고, 고로 기회는 남아있다. 오는 17일 치러지는 금융감독원 대상 국회 정무위 국감 증인으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과 BNK경남‧DGB대구은행의 준법감시인이 참석한다.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에 비해 중량감과 파급력은 크게 약화됐지만 실무역량을 갖춘 준법감시인들이 직접 직원 일탈과 이를 막지 못한 내부통제 시스템 부실에 대해 소명하고, 진정한 성찰과 함께 구체적인 대책 제시까지 만족스럽게 소화해 낸다면 분위기는 반전될 수 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송곳 질의도 필수적이다.

다만 준법감시인만으로는 역시나 미흡하다는 것이 이날 국감장 내에서 명명백백 드러난다면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오는 27일 예정된 금융위·금감원 종합감사에는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 금융사 내 실질적인 최고 권한자인 회장들을 불러야 함이 마땅하다. 이를 통해 남은 국감만큼은 제대로 치러내 맹탕 국감의 오명을 벗고 실속있는 국감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길 기대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