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조주(趙州, 778~897) 선사가 시자(侍者) 문원(文遠)과 못나기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문원이 먼저 조주 선사에게 말을 하라고 하자 선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마리 나귀와 같다.”

문원이 말했다.

“저는 그 당나귀의 다리와 같습니다.”

선사가 화답했다.

“나는 나귀 똥이다.”

문원이 말했다. 

“저는 그 똥 속의 벌레와 같습니다.”

선사가 물었다.

“너는 똥 속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문원이 대답했다.

“여름 안거를 지내겠습니다.”

조오현(曺五鉉)의 『선문선답』에서 빌린 일화다.

입안에 악취 가득 담고 사는 사람들

파적(破寂) 삼아 한 내기인지 스승의 가르침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은 굳이 구분할 것도 없다. 파적 속에도 가르침은 있게 마련이니까. 불자가 아니어서 선문답의 뜻은 모른다. 그저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기 내기였나보다 짐작할 뿐이다. 더 크고 깊은 뜻은 스님들이 풀이해 줄 테니 중생이 굳이 깨달으려 안달할 일은 아니겠다. 당나귀 똥 속에서 하안거(夏安居)를 하겠다는 제자의 여유와 용맹에 선사가 박장대소를 했는지 보일 듯 말 듯 입 꼬리를 움직여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제의 문답이 정겹다.

자신을 한없이 비천한 처지로 내몰아 그 끝에 닿으면 깨달음의 경지가 있는지 그건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남이 아닌 자신에 대한 가차 없는 채찍질이다. 그런데 자신이 아닌 남을 당나귀 똥 속으로 몰아넣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깨달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추한 욕심이거나 증오심이다. 흉한 말을 내뱉는 그 입 언저리엔 악취가 진동한다. 말하는 당사자가 당나귀 똥 속에서 허우적대는 꼴이 가관이다.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 국회의원의 험한 입이 또 자신의 이미지에 오물을 뒤집어씌웠다. 물론 그 자신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 본다. “저런 형용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마음들일 것으로 여겨진다. “참, 살아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네”라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는 지난 19일 민형배 민주당 의원의 책 『탈당의 정치』 출판기념회에서 열린 ‘북 콘서트’형식의 대화에 참여했다. 사회를 맡은 전남대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이제 검찰 공화국이 됐다고 봐야 하느냐”며 최 씨의 악구(惡口) 본능을 자극했다. 최 씨는 “공화국이라는 말은 그런 데다 붙이는 게 아니다. 공화국도 아니고 ‘동물의 왕국’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감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박 교수가 윤석열 정부 하의 한국정치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동물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맞장구를 쳤다(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최 씨가 그 말을 받아 이렇게 말했다.  

“동물농장에 비유를 하는데, 동물농장에서도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 (윤석열 정부는) 그걸 능가한다. 암컷을 비하하는 말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

정권 길들이겠다는 망상의 전과자

동료의원을 향해 ‘짤짤이’인지 ‘XX이’인지 하는 말을 했다가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았던 전력(前歷)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그 징계는 실행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고 있다). 그는 의원직을 갖고 있던 지난 2월에도 ‘암컷’을 구사했다. 그달 21일 국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특검 촉구 농성을 벌일 때였다. 

“시국을 규정하는 명언이 있다. 유시민 작가의 ‘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이다”라며 ‘코끼리는 도자기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부술 생각이 없더라도 움직이는 것만으로 도자기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명한 국민들의 댓글이 있었다. ‘한 마리도 부담스러운데 암놈까지 데리고 들어가는 바람에….’ 지금 코끼리가 하는 일은 도자기가 어떻게 되든 암컷 보호에만 열중인 것이다.”

그 때는 민주당에서 이 말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엔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니까 민주당도 비로소 아는 체 했다. 이재명 당 대표까지 나서서  “정치인에게 말 한마디는 천근의 무게를 지녔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관용 없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을러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막말의 대가(大家)인 이 대표가! 총선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당 최고위원회는 최 씨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하긴 하나마나한 징계가 되기 십상이다. 지난번 징계도 미루고 있지 않은가).

최 씨는 북 콘서트에서 “윤석열 일가로 표상되는 이 무도한 정권의 가장 강력한 가해자가 되는 길을 가고 싶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짐승들을 길들이기가 어렵다”는 말까지 했다. 직전 정부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사람이다. 기소된 상태에서 기어이 총선에 출마해 임기를 거의 다 채웠다. 결국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3년 4개월 가까이 무자격의 국회의원으로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챙길 것 다 챙겼다. 그 성공(?)에 힘입은 것일까, 자신이 정권을 길들일 수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인상이다. 

자기 가족을 그런 말로 모욕한다면 

명확한 전비(前非)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직을 가졌던 것을 반성하기는커녕 정부,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막말을 여과 없이 쏟아내고 있다.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데 대한 분풀이인 것 같은데 정작 형을 확정한 ‘김명수 대법원’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어쨌든 죄를 지은 사람이 이처럼 포악을 부려도 되는 게 민주정치인지 새삼 회의스러워지는 이즈음이다. 

세상의 어떤 여성에 대해서도 ‘암컷’이라는 표현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늘날이어서만도 아니다. 옛날에도 여성을, 특히 남의 아내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사람대접 받기를 포기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막된 언행으로 여겨졌었다. 자신이 청와대에서 모셨던 그 대통령의 부인에 대해, 반대 측에서 그런 표현으로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렸다면 최 씨와 그의 편 사람들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의 야당(지금의 여당)은 물론 내 기억이 가 닿는 한 정치권에서 여성을 두고 ‘암컷’이라고 지칭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고 도리임을 국민 모두가 다 알고 실천했던 것이다. 

똑 같이 한심한 것은 민주당 커뮤니티 ‘블루웨이브’와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 최 씨를 징계한 데 대해 분개하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는 언론 보도다. 정치가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의 정신까지 타락시키고 있음을 또렷하게 확인하게 하는 현실이 공포스럽다. 그날 북콘서트에 같이 참여, 희희낙락했던 같은 당 김용민‧민형배 의원도 한국 민주정치의 장래에 대한 절망을 부추기고 있는 점에서는 최 씨와 다를 바가 없다.  

당나귀 똥 속에서 하안거를 지내겠다고 했던 문원 스님, 최 씨의 그 악취 진동하는 입 속에서는 견뎌내지 못할 듯하다.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배웠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가? 명색이 변호사라면서 말을 이처럼 천박하게 하는 심리적 배경이 궁금하다. 변호사니까 이런 말로 감옥 갈 일은 없다고 확신해서인가? 자신도 부인과 자녀들을 가졌으면서 남의 가족에게 이처럼 몹쓸 말을 쏟아 낼 수 있는 것은 만용인지 무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