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내가 늙었을 때 난 들판으로 나가야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물가의 강아지풀도 건드려 보고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도 떠 봐야지.
소금쟁이들을 놀래키면서.

해질 무렵에는 서쪽으로 갈 거야.
노을이 내 딱딱해진 가슴을
수천 개의 반짝이는 조각들로 만드는 걸 느끼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제비꽃들과 함께 웃기도 할 거야.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산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거야.

드류 레더의 <내가 늙었을 때>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은퇴 직후에는 누구든 이런 기분일 거다. 얼마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고 싶을까. 안온과 평화가 찾아들길 꿈꾸며, 삶의 서사에 대해 아름다운 상념에 젖어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해방감만으로 은퇴 후 몇 십 년을 가만히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몇 달 못가서 곧 싫증이 나고, 길어야 1~2년 안에 심심해질 것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 수 없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면 큰일이다. 무료함을 견딘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다. 돈과 건강만 있던 사람이 시간까지 갖추면 타락할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해방이 자유가 아니라 소외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냥 잉여인간이 된 느낌이 든 나머지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애정을 쏟거나 간섭하여 질리게 하고, 결국은 자신을 외톨이로 만들고 말 수도 있다. 이처럼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당신의 은퇴가 굳이 축복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야 한다. 무언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놀 거리’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취향과 관심을 반영하는 놀이를 찾으면 여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도서관에도 가보고, 인문학 강의도 듣고, 혼자 여행도 가보라. 어린 시절에 호기심을 가졌던 소중한 것들도 다시 불러와 보자.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동호회나 모임에 참여해 보자.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취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자신이 기존에 경험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취미나 운동을 시도해 보자. 그림 그리기, 조각, 목공 등의 취미활동이나 등산, 수영, 요가,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골프, 당구, 탁구 등도 좋은 선택이다.

악기 연주나 노래 부르기 등 음악을 즐기는 것도 좋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나만의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은퇴한 남자는 적어도 세 가지 종류의 국을 끓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퍼즐, 블록 조립, 미로 찾기 등의 문제해결 놀이도 좋고, 온라인 게임이나 PC 게임 등 컴퓨터 게임도 괜찮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시청 후 감상을 적어보는 것도 좋다. 독서는 노년층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소설, 역사, 과학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어보자. 그것으로 마음을 채우고 즐길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내공이 쌓이면 관련 주제로 책을 펴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 보고, 그것을 더욱 깊이 있게 즐기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런데 무엇을 해도 시들하다면? 무언가를 하면서 시들하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가끔씩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럴 때는 잠시 쉬어가거나 다른 활동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 목표를 설정해보는 것도 괜찮다.

시간의 흐름은 모두에게 두려운 것이다. 세월이 가져오는 어쩔 수 없는 이 우울함의 그늘. 이 그늘을 벗어나려면 자신만의 놀이를 기획해야 한다. 노년의 삶이 우울한 것은 나만의 놀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느껴질수록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어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기쁨은 유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요즘 나의 놀 거리는 ‘사유(思惟)와 글쓰기’다. 부단히 노력 중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작가이다.”
“누가 당신을 작가로 임명하기라도 했나?”
“그런 사람은 없다. 나를 인간으로 임명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

유희란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게 아니고, 자신이 좋아서 하면 되는 것이다. 놀지 못하는 노년은 그냥 늙은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