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문재인 전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울산시장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청와대의 의지(아니면 열정?)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난 2020년 1월 29일 송철호 전 울산시장 등 13명이 이 사건으로 무더기 기소된 지 3년 10개월여 만이다. 그 기간 동안 송 전 시장은 임기를 다 채웠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소된 상태에서 출마해 당선된 후 지금까지 건재하다. 그간 ‘처럼회’ 멤버로 위세를 떨쳤던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총선 공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했다고 해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년형이 확정됐었다. 상고를 하지 않은 결과였다. 같은 맥락에서 문 전 대통령의 경우를 본다면 그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그는 2014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으로서 무소속 송철호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고 지원활동을 벌였다. 울산의 선거 현장에서 유권자들에게 “8번이나 낙선한 형을 당선시키는 게 나의 소원”이라고 말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송 전 시장은 18년 6‧13지방선거에서 출마 9번 만에 당선됐다. 

청와대 하명수사 이제야 1심 선고

그 선거에 청와대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다. 무려 8개부서가 동원됐다고 했다. 송 전 울산부시장의 업무수첩(17년 10월 13일자)에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을 대신해서 송 전 시장에게 출마를 요청했다는 의미로 읽힐 메모가 있었다. 전날 청와대를 방문했던 송 전 시장이 그렇게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송 당시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는 경쟁상대를 주저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울산경찰청장 황 의원을 시켜 김기현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의 비위(非違)라는 것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명수사’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청와대의 선거 개입 총 지휘자는 문 전 대통령, 실행 위원장은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유추의 어느 부분에 오류가 있는가?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덮여 있는 상태다. 임 전 실장, 조국 당시 민정수석비서관도 해당 혐의 기소에서는 제외됐다. 그들이 여전히 너무 높아서인가? 아니면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질 일이 없는 힘센 좌파이기 때문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취재진을 뒤에 달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었다. 그 후 2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은커녕 검찰이 기소도 하기 전이었다. 그는 좌파의 영웅이 되었다. 기소를 당하고 주4회씩의 살인적 재판을 감당한 끝에 유죄판결을 받아 복역을 해야 했던 박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도 (주로 좌파에 의해) ‘국정농단’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 체제에서 대통령의 ‘국정농단’이라는 게 어떤 것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찰도 법원도 설명해준 것 같지가 않다.

선거개입만으로 따진다면 문 전 대통령 쪽이 더 심하고, 적극적이고, 사적(私的)이었던 듯한데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아예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일까? 박 전 대통령은 공천에 개입한 증거를 사방팔방 흩뿌리고 다녀서 유죄가 되었을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법관이 이념 편향적 재판을 한다면

만약 법관들 사이에 이념성향이 아주 다를 경우라도, 특히 정치적 사건의 판결 기준은 동일할 수 있을까? 법관의 이념적 가치기준에 따라 상반된 판결이 나온다면 그 재판의 정당성은 무엇에 의해 담보될 수 있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의 선거에 의해 뽑힌다. 그 권한의 원천은 국민의 선택, 국민의 승인에 있는 것이다. 법관의 권한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할까? 법관은 재판에 회부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갖는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지만 법관의 ‘간섭받지 않는 판결권’은 오히려 법으로 보호된다. 판사에 따라 판결 내용이 상반된다면 그 재판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이끌던 사법부에서 정치적 성격을 띤 재판의 결과에 대한 논란이 심하게 일었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법관들이 이념성 짙은 판결을 한다는 지적이 언론들에 쏟아졌다. 보수 법관에 의한 판결이 편향됐었기 때문에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결과라고 할 것인가? 법관들이 이념에 따라 진영을 달리하고, 그것을 각자의 이념적 정체성으로 인식, 주장한다고 할 때 사법부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판관은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법부 구성 제도는 바뀌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역시 형사피고인의 처지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 최강욱 전 의원은 업무방해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임기 말이 가까워지도록 의원직을 누렸다. 험구(險口), 악구(惡口)로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일그러뜨렸는데, 지금도 그의 추한 언어는 여전하다. 윤미향 의원은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시절 후원금 국고보조금 횡령‧편취 등의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500만원, 2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기 4년을 채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엔 『윤미향과 나비의 꿈』 이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반성이나 사과는 그의 사전에는 없어 보인다. 

주 4회씩 재판 몰아칠 때는 언제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경우는 후안무치함에서 훨씬 윗길이다. 부인 정경심 전 교수가 4년 징역형을 확정 받았었다. 석방은 됐지만 죄가 없어진 건 아니다. 그 자신은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무마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래도 그는 당당하다. 우리 내부의 좌우대립을 극한까지 밀어 올렸던 그는 지난 8월 『디케의 눈물』이라는 에세이집을 내고 북콘서트에 바쁘다. 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조국이 자신의 이미지에 디케를 덧입히려 하다니! 부모의 자료 조작 기술에 힘입어 한 때 의사직까지 누렸던 그의 딸 조민은 그 다음달에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를 출간했다. 이어 지난 27일에는 부인 정 전 교수가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냈다. 진영정치, 포퓰리즘 정치가 계속되는 한 이들에게는 극렬 팬들의 응원이 계속될 것이다. 

송영길이라는 사람도 있다. 민주당 전 대표인데 대표 경선 때 돈 봉투를 돌렸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돈 봉투 돌리기 하수인들은 줄줄이 기소되고 있는데 그는 한동훈 법무장관을 가리켜 ‘어린놈’ ‘건방진놈’이라고 막말 비난을 퍼부으며 반발하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커질수록 정치적 지위는 튼튼해진다는 민주당 정치인의 공통(?)인식에 투철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이재명 대표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법치와의 전면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다만 사법부에 대해서는 공손한 태도를 보인다. 자기들 편이라고 여겨서? 반면에 검찰을 향해서는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일전불사의 각오를 과시하고 있다. 정권을 되찾는 날 가혹한 보복을 가하겠다는 위협일까? 포퓰리즘 정치, 진영 정치가 민주주의의 원리와 이상을 집어삼키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정치의 이상과 목표와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증오와 저주의 소리만 난무할 뿐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법언(法諺: 법에 관련한 지혜를 압축하여 표현한 속담)이 유난히 자주 소환되는 시절이다. 이는 사법부가 역할‧기능‧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국민들의 인식에서 비롯된 탄식 혹은 경고라고 여겨진다. 사법부까지 이념에 휘둘리고 정치에 민감해지면 민주정치는 좌절당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주4일씩 재판을 휘몰아치던 그 사법부는 어디 갔는가? (상대적) 고령의 여성 대통령에게는 그처럼 가혹할 수 있었던 사법부가 지금은 여름날 그늘에서 하품하는 소처럼 게을러진 까닭이 무엇인지 누가 말 좀 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