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등록  청렴강사.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청렴연수원등록  청렴강사.  

목민심서는 베트남 국부 호찌민의 애독서인가?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 소설가와 미술사학자, 시인 등에 의해 ‘호찌민의 애독서’로 언급되었다.
 
‘목민심서의 호찌민 애독설’이 문헌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92년 4월에 발간된 소설가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전5권)』이다. 650만 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이 책의 머리말에는 “작고한 베트남의 호치민은 일생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고 적혀 있다. (현재 황인경은 다산연구소 이사장이고, 박석무는 다산연구소 명예이사장이다)

  1993년 5월에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든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이 나왔다. 전남 강진, 해남의 역사 문화 유적을 소개한 이 책에서 저자 유홍준은 이렇게 기록했다. '갑오농민전쟁때 동학군이 선운사 마애불 배꼽에서 꺼냈던 비기(祕機)는 곧 『목민심서』였다는 전설, 베트민(越盟)의 호찌민(胡志明)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이런 것을 그분 위대함의 보론으로 삼고 싶다.'(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남도답사일번지, 1993, p 54, 2011년 개정1판, p 70)

이어서 1994년 7월 17일에 시인 고은은 「경향신문」에 '나의 산하 나의 삶-혁명가의 죽음과 시인의 죽음'이란 제목의 아래 글을 실었다.
 
“북베트남의 살아 있는 신(神) 호치민(胡志明)이 세상을 떠났다. 아무튼 그는 소년 시대 극동의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구해 읽고 한동안 정(丁)의 기일(忌日)을 알아 추모하기를 잊지 않기도 했다”
 
이어서 고은 시인은 1997년 그의 시집 『만인보』 15에서

“월남의 정신 호지명/ 일찍이 어린 시절 /동북아시아 한자권의 조선 정약용의 책 / 그 『목민심서』 따위 구해본 뒤 /정약용의 제삿날 알아내어 /호젓이 추모하기도 했던 사람”이라고 묘사했다.(고은, “호지명” 『만인보』 15, 창작과비평사, 1997, p 35)

한편 2011년 5월 17일 조선대학교와 베트남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가 주최하는 ‘한국 베트남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술대회에서 최근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 여부와 인정설의 한계'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는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별다른 근거 없이 퍼진 '카더라 명제'라고 주장했다.

최근식 교수의 논문(A4 용지 26페이지)의 ‘국문초록’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베트남의 호찌민 주석이 생전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했다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일반적 인식으로 되어 있다. 호찌민은 “일생동안 머리맡에 목민심서를 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로부터 시작하여 “호지명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꼽은 사실”, 나아가 “그는 소년시대 극동의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구해 읽고 한동안 정(丁)의 기일(忌日)을 알아 추모하기를 잊지 않기도 했다”,“호치민의 사상과 철학이 목민심서로부터 나왔다”등 (...) 『목민심서』가 베트남 현대사 발전 동인으로까지 규정해 놓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날조된 허구의 전설이라고 판정된다면 큰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이에 대한 진위검토가 중요하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 중앙지 신문, 인문 서적, 인터넷 사이트 속에 서술된 애독설 문구들을 찾아서 각 저자들에게 문의해 보았으나 별다른 근거나 사료없이 그저 들은 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옮겨진 자료 모두가 ‘카더라 명제’에 불과했다. (후략)”

한마디로 최교수의 주장은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무비판적, 무
검증적 지식인이 생산한 ‘카더라 명제’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최교수의 주장은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 증거는 연합뉴스 김선한 하노이 특파원이 쓴 2006년 1월 9일 자 기사이다.

“호찌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유품을 모은 호찌민박물관과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집무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호찌민박물관의 응웬 티 띵 관장은 9일 오전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등 한국방문단과 만난 자리에서 "호찌민박물관에는 고인과 관련된 유품 12만여 점이 소장돼 있지만 목민심서가 유품 목록에 포함돼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면서 목민심서 소장 사실을 사실상 부인했다.”
 
이렇게 하노이의 호찌민박물관이나 생전에 사용한 집무실이나 침실에는 목민심서가 없다. 이럼에도 고은 시집 '만인보'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았다. (다만 '소설 목민심서' 머리말에는  내용이 삭제되었다.) 또한 2018년에 필자가 하노이의 호찌민 거처를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는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침실 머리맡에 두고 지냈다고 설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