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헤어진 애인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이 눈발이 되어 내릴 것만 같았는데, 슬쩍 눈웃음만 짓고 가는 눈. 순간, 눈이 보여준 그 눈웃음이 내게는 마치 ‘묵언수행의 방법’처럼 다가왔다. 눈웃음에는 다변가(多辯家)처럼 쏟아내는 눈발보다는 간결함과 진중함을 겸비한 음악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한 해가 저물고 있으니 하고 싶은 말도 대설처럼 쌓일 것만 같은 대설 무렵. 나도 누군가에게 백 번의 말보다 눈웃음 한 번으로도 충분한 음악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편으로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는 말도 떠올렸다. 이 말에는 눈이 많이 내리면 눈이 보리를 덮어 보온 역할을 하므로 동해(凍害)를 적게 입어 보리 풍년이 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풍년은 풍년대로, 설경(雪景)은 설경대로, 세상에 베풀던 습관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인데, 눈발은커녕 묵언수행처럼 지나가는 대설. 그런 대설에게 거칠게 항의하려고 겨울비가 내린다는 예보만 들려온다. 

 또 하나, 이맘때 산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겨울바람이 유독 그 활동량을 늘리고 있다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면, 겨울바람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수다쟁이 같지만, 사실은 나무를 대신해서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이 이파리들을 다 떨어뜨렸다는 것은 그들만의 침묵이 왕성해졌다는 뜻이다. 고독이 깊어졌다는 뜻이다. 그 왕성한 침묵과 깊어진 고독을 들으러 온 바람이 나무들을 대신해서 울고 있는 것이다. 마음껏 울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울어야만 산도 속이 후련해지기 때문이다. 나목(裸木)이 되었기에 바람에게는 보듬어야 할 상처가 더 많아진 것. 무관심의 존재처럼 돼버렸기에 어루만져야 할 책임도 더 커진 것. 

 문득, 나도 저 겨울나무와 같은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래, 나에게는 땅속에서 힘차게 호흡하는 뿌리가 있지. 튼튼한 뿌리가 있지.’ 하는 위로를 건넨다. 살아오면서 흔들릴 때마다 속으로 속으로 삼켜야만 했던 슬픔이여. 격렬하게 울어야만 했던 기억이여. 그래도 봄이 오면 또 꽃이 필 거라는 확신으로 살아온 삶이여. 여전히 그 열정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지금은 대설 무렵.

 “(전략) 호랑이 교미하고 사슴은 뿔 빠지며(六候虎交麋角解)/ 산 박쥐는 울지 않고 지렁이는 칩거하며(鶡鴠不鳴蚯蚓結)/ 부추는 싹이 나고 마른 샘이 움직이니(荔乃挺出水泉動)/ 몸은 비록 한가하나 입은 궁금하네(身是雖閒口是累)(후략)”라는 19세기 중엽 김형수(金逈洙) 시인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를 읖조려본다. 농사를 끝내고 몸이 한가해진 대설 무렵에 시의 화자는 그와 함께 호흡했던 호랑이, 사슴, 산 박쥐, 지렁이, 그리고 부추와 마른 샘에게 안녕(安寧)을 기원하며 안부를 묻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입은 궁금하”다에서는 겨울 먹거리와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아랫목 같은 온기가 읽힌다. 

 지금은 눈 내리지 않는 대설 무렵. 오랜 가뭄으로 지나가는 두루미 떼의 그림자조차 몸에 담그지 못하는 메마른 중랑천이 마른기침으로 쿨럭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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