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정치학 박사 / 前 국민일보 주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마침내 사퇴선언을 했다. 진작 예견됐고, 또 불가피한 선택이다. 지난 10월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김 대표의 거취는 결정됐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공천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선거 패배의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당 대표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 대표’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공천을 주도했거나 외압에 눌렸거나 책임은 대표 몫일 수밖에 없다. 말을 하자면 길다. 우선 유죄확정 3개월도 채 되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사면‧복권시켰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사면 1개월 좀 넘은 시점(9월 18일)에 그를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했다. 공익제보자가 부당하게 사법적 핍박을 받았다는 게 정부‧여당의 인식이었을 것이다. 공익제보를 ‘공무상 비밀누설’로 몬 사법부의 판단을 수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텐데 이야말로 정권의 오만으로 비치기에 딱 좋은 대응이었다고 하겠다.  

정치의 장이야말로 나비효과 영역 

김 후보가 정권교체와 새 정부 성립에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그 갚음을 국가 공직으로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였다. 달리 갚을 방법도 있었을 테고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있었다. 성급히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민심에 대한 무감각, 아니면 무시였다. 구청장 보궐선거 단 1곳의 실수이긴 했다. 그런데 정치의 장이야말로 ‘나비효과’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다. 낭떠러지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입장에서 한 발이라도 헛디디는 건 바로 추락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그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치명적 타격이 되었다. 작년 3월 9일 대선과 함께 실시된 5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종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던 4곳을 모두 빼앗은 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도 김 후보가 억울하게 내놓은 자리를 거뜬히 되찾을 수 있으리라 자신했을 법하다. 그런데 민심이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김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대 각성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민심의 실망을 배가시키고 말았다.    

뒤늦게라도 사태를 수습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최고위원회 산하기구 형식의 혁신위로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혁신을 원했다면 비상대책기구 체제로 전환하거나 혁신위에 준 결정권을 부여할 일이었다. 지도부의 자기 쇄신의지 및 역량이 불신 받는 상황이었다. 혁신을 하겠다면서, 최종 결정권을 지도부가 갖는다는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혁신위의 의결 사항을 무조건적으로 수용되게 하는 것은 당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처사일 수가 있다. 지도부 대신 이를 검증할 기구가 필수적이다. 전국위원회 또는 상임전국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게 하는 게 한 방법일 수 있다. 어쨌든 최고위원회가 혁신위의 제안에 대해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처음부터 신뢰성과 기대는 반감했다. 

늦긴 했지만 용기 있는 결심이었다

예상됐던 대로 최고위원회는 ‘당 지도부, 중진, 친윤의 불출마 또는 험지출마’ 제안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대놓고 거부는 못했지만 회피적 자세로 시간을 끄는 분위기를 이어갔다. 물론 김 대표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보냈다. 때가 되면 자신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게 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런데 단호함이 결여된 인상을 주었다. 오히려 샛길을 모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안긴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국민의힘 자체 여론조사 결과였다. 당 기획조정국이 총선판세를 분석해 총선기획단에 보고했는데 내년 총선에서 서울 49석 가운데 우세지역이 단 6곳뿐이라는 내용이었다. 8일 이 같은 분석결과가 흘러나오자 당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아마도 인요한 혁신위의 좌절(당시 분위기로는)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었다. 
혁신위의 험지 출마 요구에 대규모 산악회원 동원으로 맞섰던 장제원 의원이 11일 페이스북에 선친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묘소를 찾은 사진을 올렸다. 그는 “아버지가 주신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큰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라면서 “보고 싶은 아버지! 이제 잠시 멈추려 합니다”라는 글을 곁들였다. 그 다음날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신뢰,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준 신앙’이 그를 구한 것이다. 

아마 김 대표도 돌을 던질 시점을 고르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던 중에 충격적 총선판세 조사 보고서가 나오고,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면서 더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는 13일 페이스북에 “저는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습니다”라는 사퇴의 변을 올렸다. ‘행유부득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의 고사까지 빌려 심경을 피력했다. ‘행하여도 얻지 못하면 잘못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이 대표는 언제 책임지나

늦게라도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국민의힘이 ‘절박함’으로 뭉쳐 심기일전할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당의 유력자들은 이 두 사람의 희생만으로 문제가 해소된 것으로 여기는 뻔뻔함에 발목 잡히지 말아야 한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거듭나는 국민의힘’을 유권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결심과 조치들이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단지 당내 인사들만의 경우이겠는가. 대통령실과 정부의 유력자들도 당이 무너지면 정부도 견뎌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책임을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옳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안전보다 여당의 건재가 우선과제라는 생각을, 정말 진정으로 할 일이다.

민주당은 신이 났다. 권칠승 수석 대변인이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브리핑을 했다. 제목은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아닙니까?”이다. 

“자신을 당대표로 낙점해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만을 쫓다가 결국 팽 당하는 김기현 대표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깝습니다.” 

“김기현 대표를 대신할 비대위원장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 국민의힘이 처한 현실 아닙니까? 누구 한사람 용산을 향해 바른 소리 하지 못한 국민의힘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이처럼 구구절절 말이 많다. 그런데 민주당의 이런 조롱 섞인 비판은 듣는 사람조차 낯간지럽다. 국민의힘 김 대표나 장 의원이 용산에 의해 밀려난 것처럼 주장하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입지가 더 확고해진다고 여기는 걸까? 국민의힘은 위에서부터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있는 이 대표는 켜켜이 쌓이는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당 장악력 강화 쪽으로만 질주하고 있다. 당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불출마선언에도 그는 미동조차 않는다. 이게 민주당의 현실임을 먼저 고백하고 나서 국민의힘을 비난하고 조롱하든 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