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오석륜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 이 고유명사가 이제 곧 환력(還曆)의 시간을 맞이한다. 정신없이 아등바등 살아온 삶의 이력이 여전히 일상을 지배하고, 나는 거기에 갇혀 허둥대고 있을 뿐이다. 이런 나를 어떻게 번역하여, 이 우주의 질서에 편입시켜야 할 것인가. 
 
 우선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에 대한 반성과 그 반성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나를 번역하는 계기가 되고 첫 문장이 된다. 지금까지 나를 대신해 나를 번역해준 세상의 평가나 편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기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혼란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를 번역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장치와 수단은 ‘솔직함’이라는 것을 되뇐다. 그것이 내 붓의 먹(墨)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다음으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혹은 조물주가 전해준 것으로, ‘나에게만 주어진 재능이나 장점, 그리고 단점이 무엇인지’를 헤아려본다. 그것들은 내게 기쁨과 슬픔을 주었다기보다는 살아가는 방식에 적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토대로 작용했다. 세상 헤쳐나가면서 난관을 극복하거나 좌절했던 이력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늘 이성적이고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꿈꾸었기에, 나의 재능이나 장점을 거기에 쏟아부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끔 ‘호불호’가 명료해서, 혹은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서, 세상과의 화합에 맞지 않은 적도 많았다.

 덧붙여, 나를 번역하는 또 하나의 기본은 ‘세상에 소통되는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것. 그 생각은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언어를 충실하게 옮겼을까 하는 생각에 앞서, 과연 나는 세상에 유통되는 언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언어를 체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를 헤아린다. 그리하여 나를 통해 번역된 언어가 이웃들에게 명료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전해졌을까를 반성해본다. 이런저런 기억을 들추어놓고 보면 적잖이 부끄러워진다. 내가 번역했던 언어에서 더러는 오역도 있었을 터. 아, 그 책임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 어찌 보면, 나의 번역은 나 자신의 완성도와 도덕성을 높이는 데도 충실하지 못했다. 이런 나를 앞으로 어떻게 번역하여, 이 우주의 질서에 편입시켜야 할 것인가.    

 밖으로 눈을 돌리니, 한파 속에서도 쉬지 않고 날아가는 철새들이 보인다. 저들은 자신들이 날아갈 길이 ‘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철새들이 비행하면서 공유하는 언어들의 핵심에는 ‘길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의지가 자리 잡고 있으리라. 내게도 아직 철새들의 저런 언어가 자리 잡고 있을까를 자문해보면서, 여전히 나의 번역은 줄탁동시(啐啄同時)를 꿈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사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완전한 문법에 갇혀 있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런저런 아픔을 이겨낸 반듯한 의지에게 고맙고 든든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오석륜, 「살아남았다는 것보다 흔들리며 살지 않았다는 것이 더 기쁘다」, 『사선은 둥근 생각을 갖고 있다』, 천년의시작, 2021)는 자위(自慰)의 문장을 또다시 들추어내고 싶은 지금은 허공에 열린 길도 얼어버릴 것만 같은 동짓날 아침. 여전히 나의 번역은 도돌이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