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이진곤 전 국민일보 주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본인이 살려면 김건희 특검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25일 kbs라디오에 나가서 한 말이다. 전형적인 협박 어투다. 한 전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취임과 동시에 폭망하지 않으려면 김 여사 특검 받아들이라는 거다. 국민의힘이 특검법 국회 통과 및 윤석열 대통령의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윤 대통령이 법안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으라는 압박인 셈이다. 

독배 내밀며 희희낙락하는 민주당

“총선용 특검이다, 그래서 뭐?”라는 말로 들린다. 박 의원뿐이겠는가. 절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을 지렛대 삼아 22대 총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욕심과 열의로 가슴을 부풀리고 있다. “우리는 총선에서 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거대정당의 지위를 누려야 하니까 두말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라는 강요다. 

민주당으로서는 ‘꽃놀이패’로 여기기 십상이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조사 응답이 70%에 이른다고 하지 않는가. 이 수치대로라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민심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게 되고 총선은 해보나마나가 된다. 수용한다고 해도 ‘총선 참패’의 그림은 바뀌지 않는다. 민주당은 야당이 추천하는 특별검사를 앞세워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이미지에 마음껏 환칠을 할 것이다. 특검법에 규정을 둬 날마다 ‘수사 경과’라는 것을 발표하게 하고, 민주당과 좌파언론들은 그걸 가지고 대하소설을 써낼 게 뻔하다.

정부 여당으로서는 어느 쪽을 택하든 독배라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 한 전 장관은 정치에 채 입문도 하기 전에 회복하기 어려운 중상을 입게 될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은 제대로 정부 여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해서 쾌재를 부를 만하다. 총선만 이긴다면 윤 정부를 레임덕에 빠뜨리고 이재명 당 대표는 사법적 징벌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벌써 민주당 이 대표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는 한 전 장관의 예봉을 꺾는 이득도 (특히 이 대표에게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협박으로 총선을 치르려 하다니

그러나 이것은 민주당 측의 계산일 뿐이다. 정부 여당이라고 계산이 없을 수 없다. 민주당이 주권자인 국민의 심판과 선택의 기회인 총선의 과정을 야비하다고 할 만한 방법으로 왜곡 굴절시키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은 필수적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한 전 장관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결정권을 쥔 과제다. 민주당은 노골적으로 대통령의 부인을 선거판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 의도와 저의를 뻔히 알면서 말려들 수는 없는 일이다.

상대는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대통령은 협박에 굴해서는 안 된다. 가족이 관련된 문제이든 아니든 대통령이 공격자들의 계산에 맞춰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바람과 제도의 요구에 등을 돌리는 행위다. 이런 위협이 먹혀들면 그런 총선 자체가 대의민주제를 타락시키는 요인이 되고 만다. 선거 때마다 정당들은 상대방을 곤경에 몰아넣고 여론을 오도하기 위해 야비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인 한 전 장관이 개입할 여지는 아주 좁다. 집권당의 리더로서 의견을 낼 수 있을 뿐이다. 그 의견이 경쟁정당의 당리당략적 제도 악용에 굴복하자는 것일 수는 없다. 이럴 때는 결정권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게 도리다. 상대가 정치의 상궤를 심하게 이탈하고 있는데도 표를 겁내서 대통령에게 특검수용을 요구한다면 이는 국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나 다름없다. 집권당으로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민주당이 아주 교활한 꾀를 내어 민심을 오도하려 드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고 조롱이다.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알면 경쟁상대에게 총선을 들먹이며 협박을 한다는 것인가. 소위 ‘김건희 주가 조작 의혹’이라는 것이 윤 대통령 취임 후에 있었던 일이 아니잖은가. 윤 대통령이 결혼하기도 전에 있었다는 사건의 책임을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을 통해 따지자는 것은 아무리 선거 전략이라고 해도 너무 비겁하다. 

자신의 정체 스스로 말하게 해야

새롭게 드러난 문제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 이미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주가조작 사건을 저질렀거나 연루됐던 인사들은 다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김 여사는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봐줘서 그런 게 아니라 혐의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특검으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밝혀내자고 한다. 선거 시즌에 소문과 추측, 그리고 특검의 브리핑을 통한 죄인 만들기를 위해서다. 선거 후에 특검이 소득 없이 끝난다고 민주당이 책임질 일은 없다. 이들에게는 떠들 권리만 있을 뿐 자기들 주장의 진실성을 입증할 책임은 없기 때문이다.

선전선동에서 우파 정당은 언제나 좌파에 밀렸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한 비대위원장은 당당한 우파를 만들어낼 책무를 지고 있다. 이재명이 누구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치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그들 스스로 대답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민주화투쟁은 커녕 전과 4건, 복잡하게 얽힌 복잡하고 다양한 혐의들에다 전설적 욕쟁이로 유명한 그가 어떻게 거대 정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지를 말하게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부인을, 특검을 시켜 수사하게 하려고 집요하게 시도해 온 그 자신의 부인이 누구인지를 국민이 알게 하는 것도 상응하는 선거 전략일 수 있다. 경기도청 5급, 7급 직원을 상시적 개인비서 겸 심부름꾼으로 부린 일에 대해 당시의 도지사와 그 부인이 직접 말하도록 해야 옳다. 경기도 법인카드가 도지사 부인의 생활비 충당카드로 오용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필요하다. 

지금의 민주당은 민주정당이라 할 수가 없다. ‘철지난’ 정도가 아니라 ‘시대지난’ 보스정당체제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는 정치집단이다. 이 당에 직간접적으로 소속된 의원들(당 소속 167명+친 민주 무소속 7명) 대부분은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되었다. 근년(近年)에 새로 생겨난 의원형(議員型)이라고 하겠다. 이 대표가 시키는 대로만 행하는 이 집단과 맞싸우려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게 당당함이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우파의 기대가 쏠리는 까닭이 달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