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빨리 은퇴해서 인생을 즐기고 싶단 말이야.
편안히 앉아 책도 읽고,
골프와 와인도 즐기고,
호화 유람선 타고 해외여행도 하고 싶어.

이제 인생을 누리면서 살고 싶다고? 즐거운 상상을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경제적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는가? 꿈을 쫒겠다고 섣불리 직장을 그만두거나 은퇴를 선언할 일은 아니다. 꿈도 안정된 일상 위에서 세워야 한다.

연금 나올 때도 아직 멀었고, 자식 결혼도 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연금만 믿고 기나긴 노후를 살아가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연금제도는 길어진 당신의 노후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졌다. 60평생 시대에 맞춰 설계된 연금제도가 100세 시대에 그대로 적용될 리 없다. 공적연금은 국가가 보장한다지만, 현역세대의 부담능력을 초과한다면 그것이 어찌 가능할까?

연금은 정치의 산물이다. 인류역사에서 연금제도가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1889년 프러시아 노령연금이다. 제도의 도입배경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마르크시즘의 영향으로 노동운동이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당근책이었다. 국민복지보다는 전제군주체제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비스마르크의 현명한(?) 정치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대가 안고 있는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시한폭탄을 정치가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중요한 게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과연 놀고 쉬는 것만으로 은퇴 후 30~40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인생,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없어져도 인간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삶의 의미를 잃고 점점 우울해 지거나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할일 없는 노년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렇지만 힘겹게 현역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은퇴하지 말라는 말 따윈 설득력이 없다. 너무 지쳐 빨리 은퇴해서 쉬는 것만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릴까? 100세 시대라지만 50~60세에 병 얻으면 지옥문 열린 채로 고통 받다 가는 게 인생이니, 차라리 몸 성할 때 빨리 은퇴해서 하고픈 거 하고, 가고픈 곳 가고, 먹고픈 거 먹고 즐기다가 인생 마감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60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은퇴를 준비해야 할까, 계속 돈을 벌고 일을 할 준비를 해야 할까?

내 생각은 후자다. 피곤에 지쳤다면 일의 강도를 줄이고 일과 놀이를 병행하면 된다. ‘일하는 은퇴(working retirement)!’ 다소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반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놀고 쉬면서, 일도 손에서 놓지 않는 절반의 은퇴를 하는 것이다. 인생에 유효기간이란 없다. 인생은 롱런을 해야 된다.

나도 여유로운 은퇴를 꿈꿨지만, 실제 은퇴생활을 해보니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은퇴는 낭만이 아닌 현실이다. 국민연금을 받지만 건강보험료 등을 빼고 나면 용돈 수준이다. 대부분의 생활비는 임대료 수입으로 충당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세간에 회자되기 전에 살고 있던 주택을 재건축해서 약간의 ‘월세연금’을 준비해 뒀던 것이다. 글을 써서 기고도 하고 책도 내고, 기회가 되면 연구와 강의도 한다. 수입이래야 보잘 것 없지만, 여기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이 시대의 은퇴자 중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노는 데만 집중한 사람 중에서 권태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위를 살펴보자. 은퇴를 해도 먹고 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를 하지 않고, 은퇴를 할 수 없는 경제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이 카드 게임을 하거나 매일 골프를 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남아 있는 날이 아니라 새롭게 열리는 날들, 60세 이후의 성장과 자유를 탐색해 보자. 인생을 바꿀 새로운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