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한 생은 시름에 돈다오.

김억의 시 <물레>의 첫 구절이다. 사람의 한 생(生)이 시름에 돈다고 하지만, 근심과 걱정은 노년에 더 깊다. 노년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다. 젊음을 빼앗기니 마음조차 빼앗겨 낮에도 밤, 밤에도 밤이다. 이 밤의 어둠에서 언제나 벗어날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말라. 걱정할 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인가?
안 죽을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병이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어 천국에 갈 것 같은가, 지옥에 갈 것 같은가?
천국에 갈 것 같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지옥에 갈 것 같으면 가라. 가서 체험해 보라.

성철스님이 이렇게 말했단다. 그래, 어지간하면 걱정하지 말자. 그리고 걱정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겪어보면 될 일이다. 걱정이나 불안은 어떤 위협에 대응하여 부정적인 결과를 줄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순기능을 가지는 경고 신호로서 정상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걱정을 하거나 불안해하면 도리어 병이 된다.

걱정이란 원래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번뇌는 덩어리가 아니라 그저 조건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물결 같은 존재다. 우리가 걸려서 넘어지는 걱정이 실은 바람처럼 통과할 수 있는 그물이 아닐까. 자연스레 지나가면 그냥 인연 따라 흘러갈 일이다. 이 이치를 깨달으면 우리들의 삶이 훨씬 편안해진다.

영국 속담에 ‘근심은 세월을 거치지 않고 백발을 가져온다.’고 했다.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되거나 수월해지는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우리는 습관처럼 근심에 짓눌려 산다. 걱정한다고 늙음을 지연시키거나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릴 수 있을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빨리 해결하고, 그렇지 않는 것이라면 물 흐르는 대로 같이 흘러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중국 명나라 사람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는 이런 글이 있다.
“물은 파도만 아니면 스스로 고요해지고, 거울은 가리는 것만 없으면 스스로 밝아진다.”
이처럼 마음도 맑게 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혼란스러움만 없애면 저절로 맑아질 것이다. 즐거움도 일부러 찾을 것이 아니라 그 괴로움만 없애면 저절로 즐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찌 쉬운 일이던가? 걱정을 잊으려고 하지만 잊히지 않는데 어떻게 잊나? 무시하려고 하지만 덤벼드는데 어찌 눈여겨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걱정을 하는 대신에 최선을 다해보면 어떨까? 아마 많은 걱정거리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걱정을 줄이는 일은 최선을 다해 그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에 몰입하는 동안에는 걱정도 잊어버릴 수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가슴 뛰는 기쁜 일로 시답잖은 걱정들을 덮어버리는 거다. 크고 묵직한 걱정으로 잔걱정을 덮어버리자. 젊었을 때 걱정이 덜한 것은 가슴 벅찬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할 일 없는 노년에 무논에 잡풀 나듯이 온갖 근심걱정이 돋아난다. 마른 논을 안고 도는 도랑처럼 세상을 위해 보람된 큰일을 꾀해보자.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순탄하게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절망도, 죽기 전에는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도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면 왜 그런 일을 가지고 힘들어했나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쓴맛이 다하고 나면 단맛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걱정과 근심을 이해하고 조절하며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힘들다면 걸어라.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는 데는 걷는 것이 최고다. 아메리카의 어느 인디언 부족은 기우제만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 지내기 때문이다.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걷고 또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