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젊었을 때는 일에 쫓겨서 ‘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여전히 일은 밀려 있었으니까.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하루에 단 10분도 생각에 잠길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그렇게 바빠야 할 일이 없다. 이제 삶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수십 년 동안 다녔던 직장, 그리고 거기서 했던 일들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던가? 일해서 돈 벌고, 결혼해서 자식 낳아 키우고. 이렇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모든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으로 마음을 다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잘하고, 또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을까? 억누를 수 없는 나의 천성은 어떤 것일까? 우주에는 아마도 나밖에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하지 않고 지나쳐버리면 더 이상 아무것도 되지 않는 그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또 꼭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자. 할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인생 후반기를 신이 소명한 이끌림대로 잘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라는 제품이 무엇에 적합한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에 태어나서 주어진 조건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자신을 깊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명 찾기를 위한 좋은 방법은 없을까?

우선 독서나 여행, 명상 등을 통해서 자기 내면을 탐색해 본다. 그러면 이전에는 몰랐으나 실제로는 늘 존재했던 자기 자신의 소명을 발견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서 존재의 의미, 가치 있는 삶, 성취와 보람과 행복 등 보다 넓은 의미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재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함으로써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 보자. 물론 각 질문별로 한 개의 답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들을 거침없이 다 적은 후에 종합해 보면 이외로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적합한 소명을 찾을 수 있다.

질문 1 : 나는 무엇을 할 때 편하고 행복한가?
질문 2 :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 3 :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얼룩 고양이가 있었다. 한때는 임금님의, 한때는 뱃사공의, 한때는 마술사의, 한때는 또 누구누구의 고양이로 살았다. 이렇게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다. 그러나 정작 그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고양이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바로 ‘누구의 나’로 살았지, 자기 자신으로 산 게 아니었다. 그래서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그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는 자기를 무척 좋아했고, 새하얗고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 귀여운 새끼를 많이 낳았다. 세월이 흘러 하얀 고양이도 죽고 그 고양이도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라는 그림책 이야기다. ‘누구의 나’로 사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는 가슴 울리는 메시지를 준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들의 영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라고 했다. “어째서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관해서는 자신의 판단보다 남들의 판단을 더 평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다른 사람이 바라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고 내가 잘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젊었을 때는 몰라도 노년기에는 ‘누구의 나’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 노년에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좋다.